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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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는 틀렸다

해외 칼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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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7-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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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arianism at the Brink | Mises Wire

Murray N. Rothbard
머레이 뉴턴 라스바드는 매우 지적이고 박학다식한 학자였으며, 주로 경제학, 정치철학, 경제사, 그리고 법학에 중대한 공헌을 남겼다. 그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저술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개발하고 확장하였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라스바드는 오스트리아학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고, 1929년의 대공황과 미국의 은행사와 같은 역사적 사건에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을 응용하기도 했다. 라스바드는 경제를 통제하는 강제적인 정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독점적인 힘이야말로, 대중의 자유와 장기적인 복지에 대한 가장 거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했으며, 모든 종류의 국가를 가장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집결된 ‘거대한 도적 패거리’로 정의했다.

주제 : #인간행동학

원문 : The Consequences of Human Action: Intended or Unintended? (게재일 : 1987년 5월)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8세기의 스코틀랜드 사회학자 아담 퍼거슨(Adam Ferguson)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이 인간 행동의 의도하지 않은(unintended) 결과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즉 "인간 설계(human design)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행동(human action)의 결과"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기에, 자주 인용되는 이 구호는 어느 정도 타당하다. 아담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정육점 주인이나 제빵사의 자비심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덕분에 우리는 고기와 빵을 얻을 수 있다. 정육점 주인과 제빵사는 오직 자기이익만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며 행동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효율적인 생산과 만인의 번영에 기여한다는 점은 분명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분석해본다면, 우리는 이 구호가 가진 결함을 파악할 수 있다. 정육점 주인, 제빵사, 혹은 다른 사업가의 의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우리가 과연 알 수 있을까? 그들의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확실하게 말할 방도가 없다. 예컨대, 정육점 주인과 제빵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유시장 경제학을 공부하고, 사리사욕을 위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곧 이웃과 사회 전체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그들은 장사를 하면서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결과 역시 의도하며 행동한다. 하이에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경제학 이론이 단지 의도하지 않은 인간 행동의 결과를 연구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시장 참여자들이 그러한 경제학 이론을 약간 학습하여 그것을 의식적으로 의도하며 행동한다면, 경제학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인가?

게다가, 건전한 경제학 이론을 학습하는 것은 시장의 기업가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만약 기업인들이 반자본주의 선동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영리활동이 이웃들을 착취한다는 잘못된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이윤의 추구를 의도적으로 제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건전한 경제학을 읽고 이해한다면, 그러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기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경제학을 완전히 인식했기 때문에, 의도적인 행동의 결과로 더 많은 자기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더 큰 번영 역시 초래할 것이다.

[상기한 예시의 모든 행동은 의도적이다.] 그렇다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그토록 대단한 이유는 무엇이고, 경제학이 의도한 결과를 연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회에서의 지식의 축적(the accumulation of knowledge in society)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의도한 결과로 바꾸지 않는가? [역주: 이 문장은 하이에크의 유명한 논문 "사회에서의 지식의 사용"(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의 제목과 주장을 응용하여 그를 비판하는 말장난이다.]

뿐만 아니라,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은 개인들이 의식적으로 목표를 추구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선택한다고 명시한다. 만약 인간이 목표를 추구한다면, 분명 목표, 즉 행동의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결론이다. 의도적인 선택을 강조하면서, 미제스는 인간을 시장과 세계의 합리적(rational, 이성적)이고 의식적인 행위자로 상정한다. 그러나 하이에크의 지적 전통은 종종 인간을 로봇 혹은 생물학적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할 뿐인 아메바로 상정하는 함정에 빠진다.

신비로운 방법론은 종종 놀라운 정치적 결과를 초래한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20세기에 들어서 정부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약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이는 정부의 급격한 성장 역시 계획된 것이 아님을 의미하고,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정부의 성장이 가져온 치명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인간에 대한 퍼거슨과 하이에크의 이해는, 권력 엘리트들이 정부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정부로부터 특권을 얻으며 사리사욕을 의도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을 은폐한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교훈을 발전시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현명하고 정직한 길을 걷는 것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미제스주의 이론의 기치(banner)를 용감무쌍하고 고결하게 고수하며 우리가 현재 마주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한다. '공공의 이익'과 '일반 복지'라는 화려한 허구 뒤에 숨겨져 있는 특수이익집단의 진실을 최선을 다해 의식하며 거짓없이 폭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원래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미제스의 교훈을 망가뜨리는 길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동의를 구하거나 심지어 존경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논란거리도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남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심지어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자유시장'에서 '자유'를 빼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길의 궁극적 목적지는 거대정부를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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