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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021년 8월호] 실패한 문명교체

국내 칼럼
역사
작성자
작성일
2021-08-0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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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사회현안

미제스 와이어 2021년 정기칼럼 목차 <펼치기>

지난 6월 11일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 힘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한 논평자는 즉각 이준석 대표가 ‘세대교체’를 잘 할 수 있을까를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150여 년 전 시도했던 한국(조선왕조 말기 이후를 통칭함)과 일본에서의 세대교체를 비교했다. 그는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세대교체를 성공했지만 한국에서 1884년 갑신정변에 의한 세대교체는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1894년에 일본에 의해 대대적인 개혁이 강요되었지만 그 실천은 느리고 타협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기가 시작됨으로써 자발적인 개혁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 의해 개혁이 봉쇄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일어났던 두 사건을 세대교체로 규정하는 것은 그 두 사건의 의미를 매우 축소하는 것이다. 두 나라에서 단행된 일련의 개혁은 실제로는 ‘문명교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150여 년 전 한국은 ‘자력으로’ 문명교체에 실패했고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문명교체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 한국도 문명교체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국의 문명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본다. 한국의 문명교체가 개항(1876년)으로 시작되었지만 식민지기에는 일본에 의해 강요된 부분도 적지 않았다. 본격적인 문명교체는 헌법의 제정(1948년), 1공화국의 교육 투자, 3공화국의 공업화 등으로 이어졌고 지속되었다. 다만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문명교체는 남한에서만 제한되었고 북한에서는 문명교체가 오히려 후퇴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 가임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005년에 1.26명에서 그 이후 약간 회복하여 2018년에 1.42명이다. 인구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을 보여주는 지표인 인구대체율은 최소 합계출산율이 2.1명이 되어야 한다. 일본이 2018년에 합계출산율이 1.42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에 절대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국은 가임 여성의 합계출산율이 2018년에 0.98명, 2019년 0.92명, 2020년 0.84명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보다 훨씬 더 낮다. 2019-2020년에 사망자수(2020년 30.5만 명 추정)가 출생자수(2020년 27.2만 명 추정)보다 더 많아져서 그 시점부터 절대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당분간 지속될 뿐만 아니라 출산 보조금, 어린이 육아 보조금 등의 방법으로는 이런 추세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미래에 인구의 고령화도 지속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저출산·고령화는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던질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문명교체에 성공했지만 한국도, 비록 일본보다 늦었지만, 문명교체에 성공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라는 자부심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합계출산율이 보여주는 바는 그 문명교체의 영향이, 한국에서는 이미 끝이 났고 일본도 한국보다는 좀 늦어질 것이지만 문명교체의 영향이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인구의 증감이 문명교체의 영향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보다 더 훌륭한 지표를 찾기가 어렵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문명교체가 150년만에 실패로 끝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봉건제 국가였지만 정치체제는 한국의 경우에 절대군주제였고 일본은 막부제였다.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봉건군주제나 봉건막부제를 포기하고 서양의 근대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즉 150여 년 전 두 나라가 직면한 상황은 세대교체가 아니라 문명교체를 요구받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문명교체를 이룩한 한국과 일본이 무엇 때문에 문명이 쇠퇴하는 길로 들어섰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토록 빨리 말이다. 이 글에서는 그 때의 문명교체의 의미를 점검해보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규명해본다. 이것은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대책의 방향도 제시해준다. 이와 함께, 유럽과 미국의 문명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을 할 것이다.

먼저 문명교체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들여다본다. 여기에서는 이 글의 목적상 메이지유신으로 단행한 문명교체의 한계만을 간략히 지적한다. 당시 서양문명을 꽃피게 했던 핵심은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라는 정치철학과 ‘개인주의’였다. 서양, 특히 영국, 미국, 독일 등의 공업화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세기 말 서양문명은 대외적으로는 팽창주의, 즉 제국주의를 채택했다. 논리적으로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제국주의와 명백히 모순이다.

그러나 일본은 공업화와 서양의 근대적 정치제도를 일부 도입했지만 고전적 자유주의를 버리고 국가주의를, 개인주의 대신에 전체주의를, 대외 정책에서는 불간섭주의(도쿠가와 막부의 대외정책) 대신에 군국주의(일본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군인정신으로 메이지유신(1868년)을 이끌었기 때문에 1868-1945년 기간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군국주의 국가였다)를, 정치에서는 일당 독재(아직도 일본 야당들은 실질적인 수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독재국가로 간주하는 것이 정확하다)를 선택했다. 그러므로 일본은 급속한 공업화에는 성공했지만 개인은 국가의 도구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군국주의적 팽창의 희생양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일본은 봉건막부제를 서양문명으로 교체했지만 서양문명의 껍데기만 흉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 정책에서는 서양보다 더 나쁜 군국주의를 채택했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본화된’ 서양문명의 채택이지 서양문명의 교체는 아니다.

한국은 자신의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을 통해서 문명교체를, 비록 일부이지만, 단행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외 정책에서 군국주의를 선택하지 않았던 점만이 일본과 달랐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한국도 고스란히 입었다. 게다가,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한국과 일본은 모두 복지국가를 지향함으로써 사실상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정치철학이나 정치제도보다는 화폐가 훨씬 더 중요하다. 국가 차원의 경제위기는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그런 경제위기의 원인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불환지폐이기 때문이다. 태환지폐인 경우에도 정부가 태환을 중단하고 전쟁 비용 등을 불환지폐로 조달하는 경우에는 경제위기가 발생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국내에서는 1933년에, 그리고 해외에서는 1971년에 금태환을 중지했다. 그 결과로 1971년 이후로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불환지폐를 사용하게 되었다. 1971년 이후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국가는 크고 작은 경제위기를 반복적으로 그리고 빈번하게 겪게 되었다. 그것은 불환지폐 때문이다. 한국은 1867년에 당백전을 대량 발행했는데 그 때부터 사실상의 불환지폐 국가가 되었고 군국 일본의 강요에 의해 식민지기부터 명목상으로도 불환지폐를 사용했다. 더 멀게는, 1678년 숙종이 부분지급준비주화를 발행함으로써 당백전 과다 발행의 씨앗을 그 때 뿌렸다. 일본은 1897년 이전에는 은본위제도였고 1897년에 금본위제로 전환했지만 1917년에 실질적인 의미에서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한국, 미국, 일본 등의 과거 화폐제도를 비교 평가한다면 미국, 일본, 한국 등의 순서일 것이다. 지금은 화폐제도라는 관점에서 세 나라가 차이가 없지만 불환지폐의 폐해라는 관점에서 세 나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없지 않다.

유럽과 미국도 서양문명을 초래했던 근본적인 원인을 망각하고 폐기해버렸다.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은 유럽, 미국, 일본 등을 전쟁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전쟁 이후 서양의 대부분의 나라는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복지국가는 국가주의이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은 불환지폐를 전 세계로 확산하게 만들었다. 이제 서양문명의 발원지인 서양에서도, 문명을 초래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그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1970년대 서양에서 이런 문제에 직면하여 신자유주의가 국가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되었지만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목되면서 불행하게도 세계 사상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150여 년 전 시작된 문명교체는 서양문명의 핵심은 빼버리고 껍데기만 바꾼 것이다. 그런 문명교체가 그 수명이 길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때 빼버렸던 핵심적인 것들을 다시 채우거나 교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철학으로는 리버테리어니즘(사유재산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자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치 철학이다)을, 복지국가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 국가주의 등도 버리고 개인주의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화폐도 상품화폐 또는 그를 기초로 한 태환지폐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앞에서 언급한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서양문명(서양문명의 핵심이 빠져버렸다는 점에서 지금의 서양문명은 초기의 서양문명에 비하면 가짜 서양문명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의 쇠퇴를 막을 길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서양문명은 지금도 쇠퇴하고 있지만 1971년 이후에 는 가속화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위기는 작금의 서양문명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과 일본은 150여 년 전에 문명교체를 시작했지만 그 때의 문명교체가 껍데기뿐이었기 때문에 이제 그 수명이 끝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절대인구의 감소가 150여 년 전 시작한 문명교체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아이를 적게 낳거나 결혼을 하지 않는 등의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출산 보조금과 같은 미시적 차원의 해결책은 백약이 무효라는 것은 지난 20여 년의 결혼·출산·교육 비용 지원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50여 년 전 시작한 문명교체는 이제 파국이 가까웠음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150여 년 전 시작한 문명교체가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성찰하고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태그 : #간섭주의 #경기변동 #세계사 #한국사 #미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