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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1월호] 2차 문명교체와 근대정신

국내 칼럼
역사
작성자
작성일
2022-01-01 13:33
조회
705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세계사

2022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신년 벽두(劈頭)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역사가 김용섭은 『동아시아 역사 속의 한국문명의 전환』(2008년, 2015년 증보판)이라는 야심찬 역사서 한 권을 출간했다. 그는 그 책에서 ‘문명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해석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나라의 역사를 ‘일국사’(一國史)가 아니라 ‘글로벌 역사’-문명의 수용, 변용,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섭은 한국문명의 전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한민족의 시원문명은 알타이어계 북방민족의 문명이고 이 시기가 한민족 문명 형성의 요람기이다. 둘째, 1차 문명전환은 중국문명을 수용하는 것이고 그런 전환은 3국(고구려·백제·신라)시기를 전후하여 시작되었고 조선왕조 중기에서 끝이 났다. 셋째, 2차 문명전환은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것이고 조선왕조 후기에 시작되어 현재 진행형이다. 넷째, 현대의 서구문명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 문명권을 형성하고 그 결과로 세계인은 모두 문명공동체이다.

필자는 ‘문명전환’ 대신에 ‘문명교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전환보다는 교체가 더 적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교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일시에 뿌리째 교체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정악과 판소리 등은 자체가 없어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퓨전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앞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와 관련하여 미래 계획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유도하고자 한다.

서구문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근대문명을 지칭한다고 본다면 시간적으로는 18세기 중후반 이후가 대상이 될 것이다. 1876년(고종13) 개항이 서양문명으로의 교체 압력이 처음으로 극적으로 나타났던 시점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천주교 등은 청나라를 통해 수입되었지만 문명교체의 동력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압살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갑오개혁 등으로 문명교체의 외부 압력은 작지 않았지만 대원군과 갑오동학군은 척왜척양(斥倭斥洋)을 외치면서 문명교체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 이후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멸망, 일제강점,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그 이후 문민정부들 등에서 문명교체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개항을 기준으로 본다면 2차 문명교체는 대략 150년이 지나고 있다.

서양의 근대문명은 ‘근대정신’이 요체이다. 근대정신을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다양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근대정신은 18세기 중엽 무렵 서양에서 확산하기 시작한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라는 정치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정신은 경험주의에 입각한 과학발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즉 서양문명의 근대정신은 과학을 토대로 하는 공업화 또는 산업화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2차 문명교체를 평가할 기준은 서양의 근대정신이고 세부적으로는 이성에 대한 신뢰, 다양성과 자유의 존중, 고전적 자유주의의 확산 등일 것이다. 그리고 과학을 토대로 하는 공업화는 근대정신의 결과, 즉 하부구조일 뿐이다.

그러면 개항 이후 2차 문명교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그러나 개항 이후 현재까지의 문명교체를 전부 다루는 것은 이 짧은 글에서는 쉽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만 2차 문명교체를 평가해 본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연성(軟性) 전체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전체주의에서 이성, 다양성, 자유 등은 불신 또는 말살되고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화(開花)될 터전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들과 민간들의 노력으로 공업화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작금의 한국 사회는 2차 문명교체의 요체인 근대정신은 던져버리고 그 하부구조인 공업화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2차 문명교체는 실패로 끝이 날 공산이 크다. 아직도 그런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2022년 새해 벽두에 세워야 할 미래 계획은 2차 문명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의 근대정신을 살리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성에 대한 신뢰, 다양성과 자유의 존중, 고전적 자유주의의 확산을 기도하는 것이다. 세계인이 문명공동체가 되는 세상에서 적자생존하기 위해서도 서양의 근대정신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서양의 근대정신을 살리는 일은 사회 전체의 미래 계획을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개인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공공장소에서 이성에 대한 신뢰의 제고, 다양성과 자유의 존중의 제고, 고전적 자유주의의 확산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전체주의가 아닌 개인주의에서 개인이 모든 일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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