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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5월호]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 중이다

국내 칼럼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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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5-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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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사회현안

2022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내전의 원인들: 큰 정부, 가족주의 그리고 지식인들

대한민국은 지금 내전(內戰) 중이다. 이 내전이 통상의 전쟁과 다른 점은 내전에서 사용하는 병기가 ‘스마트폰’이고 총알은 ‘문자폭탄’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자신들의 주장을 큰 소리로 외치지만 그런 일은 문자폭탄에 비교하면 내전에서 그 비중이 극히 작다. 문제는 내전으로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내전의 특징은 더 있다. 첫째, 전선(戰線)이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둘째, 전쟁의 지도자가 없거나 수시로 바뀐다. 셋째, 내전에서 사람들은 마음을 다칠 수는 있지만 몸을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열전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 내전의 성격상 그 원인들을 규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전을 끝낼 방법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다섯째, 내전을 끝내지 않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인다.

가장 큰 내전 중의 하나인 미국의 남북전쟁과 비교하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그런 특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내전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명박 정부 시대의 광우병 사태 등에서부터 내전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직관 할 수 있다.

작금의 내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이념, 세대, 지역, 젠더 등, 제각각의 이유를 댄다. 문제는 그런 여러 가지 이유를 가로지르는 공통적인 원인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첫째, 정부의 지속적인 팽창과 큰 규모의 정부는 내전 발발의 1차 조건이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팽창하면 그런 정부 지출을 조금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도 그 혜택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즉 정부 지출이 증가하면 그만큼 정부 지출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이나 단체가 늘어나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나 정권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해 관계자가 비례하여 많아지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지속적인 팽창과 큰 규모의 정부는 내전 발발의 1차 조건이다.

정부 지출이 이해 관계자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쉬운 예는 탈원전을 한다는 명분으로 태양광 에너지 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다수의 민주화 운동가나 친문 인사들이 정부 지출의 혜택을 입었던 경우이다. 태양광 에너지 프로젝트가 산하(山河)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비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국민부담률은 1972년에 12.1%에서 2019년에 27.4%로 증가하여 같은 기간 약 2.3배 늘어났다. 국민부담률은 각 연도 조세부담률에 사회부담률을 합산한 것이다. 게다가, 국가부채는 2021년에 2196조 4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이다. 1인당 국가부채는 2021년에 4252만원이고 2011년 1525만원과 비교하면 약 2.8배이다. 여기에는 지방정부와 공기업의 부채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의 규모는 국민부담률에 국가부채와 숨겨진 국가부채를 합산한 것이다. 2021년 현재 정부의 규모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크다. 국가부채는 국민부담률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추세는 앞으로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너무 손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작금의 대한민국 내전에는 가족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가족주의란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를 가족의 확장 또는 확대로 보는 이념을 말한다. 가장 간단 예는 은행이나 공공기관에 가면 은행원, 공무원 등이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제3자를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등으로 부르는 경우이다. TV프로그램에서 여자 친구나 부인이 남자 친구나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남편을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빠라고 부르는 장면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만큼 가족주의가 보편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한 장면이기도 하다.

가족주의에서 내 가족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만 상대 가족은 파괴하거나 망가뜨려야 할 대상이다. 가족주의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권이나 특권을 놓고 다투거나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 가족은 타도 또는 파괴의 대상일 뿐이다.

가족주의에서는, 내 가족은 어떤 범죄나 잘못을 저지더라도 보호해야 하지만 상대 가족은 어떤 경우라도 비판하거나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게 할 때만이 내 가족이 이권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A라는 가족집단의 한 가족이 B라는 가족집단의 한 가족을 ‘터무니없는’ 말로 공격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 경우에는 A가족집단이 자신의 가족집단의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지 공격 내용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프레임 씌우기’이다. 가족주의가 이렇게 악용되면 ‘공정과 상식’은 간 데가 없고 ‘불공정과 몰상식’이 난무한다.

이런 경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에서이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내 가족의 일원이지만 상대 후보는 상대 가족으로서 파괴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극단적으로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내 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에 비록 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그 후보를 비판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동일한 가족에 속한 사람이라도 문자폭탄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내 가족 또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비난, 지적 등은 그것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용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가족주의에서 이성, 합리, 다양성, 자유, 인권 등과 같은 가치는 깡그리 무시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딸의 입시비리 의혹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을 때를 상기해보자.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모두가 조국 전 장관에게 큰 빚을 졌다고 했을 때 대통령의 그런 태도는 가족주의를 잘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저지른 입시 비리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대해서는 눈감고 그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에게 조국 전 장관과 딸은 내 가족의 일원이다. 문 대통령에게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거나 비난했던 국민은 상대 가족일 뿐이다. 그 때 대통령이 한 말은 가족주의가 궁극적 원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가족주의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기로 한다. 몇 년 전 한동훈 후보자가 문재인 정권 검찰 검사로 활동할 때는 당시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은 그를 훌륭한 검사로 극구 칭찬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중순 그가 곧 세워질 윤석열 정부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민주당은 즉각 그를 ‘암 덩어리’라고 맹비난했다. 아직 한동훈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여 어떤 정책적 결정을 하지 않았음에도 맹비난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동일 정당이 동일 인물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극도로 다르게 하는 것은 어떤 인물이 자신의 가족이냐 상대 가족에 속하느냐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세월호 참사에서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와 편향적 사고는 1차적으로는 이념과 잘못된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문제는 그런 진영 논리와 편향적 사고의 심층에는 가족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주의가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내전의 중요한 원인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가족주의가 왜, 언제,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념이 되었는가는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가족주의에 대한 해결책도 간단명료하지 않아 보인다.

셋째, 가족주의의 확산에는 지식인이 한 몫을 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이 반대자들에게 문자폭탄을 퍼붓는 것을 보고 그런 다양한 행동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한 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말 퇴임 인터뷰에서 ‘우리 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계에서는 많은 정치인이 가족주의를 악용하여 지지자들을 규합하기도 하고 반대자들을 몰아세우기도 한다. 물론 이 때 공익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든 지식인은 사익(私益)을 위하여 가족주의를 악용하는 일을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가족주의가 내전의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한국의 지식인들은 내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부는 큰 위기가 오면 더 빠르게 팽창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그 점을 너무 잘 목격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가족주의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가족주의는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을 빼고 장점만 취하기는 어렵다. 가족주의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식인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의 한국 사회는 전체주의라는 유령도 지배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아직은 연성의 형태이지만 말이다.

지금의 내전은 어쩌면 상대방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내전이야말로 국민 통합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국민 통합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어버이 수령 동지’라는 말을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 북한을 보면 가족주의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내전을 끝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정부의 크기를 확 줄이는 것이다. 정부의 크기를 줄이는 일은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릴 것이다. 정부의 크기와 경제성장률은 반비례 관계가 있음은 1960년대 산업화 이래로 너무도 분명한 진실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가족주의를 악용할 때의 폐해를 잘 알아야 한다. 지식인들은 더욱더 가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문자폭탄은 폭력의 일부이기 때문에 형사 처벌하는 것이 옳다. 언론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첫걸음은 문자폭탄을 처벌하는 일이다.


태그 : #큰정부 #정치비판 #한국정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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