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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테리언 현실주의: 국제관계이론

해외 칼럼
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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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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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 Raimondo | Chronicles

Justin Raimondo (1951 - 2019)

Antiwar.com 의 창립자 겸 편집장으로 재직했던 저스틴 라이먼도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 운동가였다. 1970년대부터 머레이 라스바드와 인연을 맺어온 그는 2000년에 라스바드의 일대기인 <머레이 라스바드: 국가의 적(An Enemy of the State: The Life of Murray N. Rothbard)> 을 집필했으며, 동성애자로서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아니라 결혼제도의 전적인 민영화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2017년에 폐암 4기로 진단을 받은 후, 2019년 6월 27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주제 : #전쟁과_외교정책

원문 : Looking at the ‘Big Picture’ Libertarian realism: a theory of foreign relations (게재일 : 2011년 11월 11일)
번역 : 한창헌 연구원


우리의 하루하루 근심거리 안티워닷컴(Antiwar.com) 여기에 있다. 반간섭주의 운동은 전쟁정당의 음모를 낱낱이헤치고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전쟁 정당의 음모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는다. 요컨대, 이는 저널리스트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당장 급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작업이 있다. 바로 이론을 개발하는 영역, 즉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개관을 개발하여 우리에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또 왜 우리가 세계 제국이 되었는지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리버테리언 현실주의'(libertarian realism)라고 할 수 있는 내 정책결정과정 이론에 의하면, 의사 결정자들이 국경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에 반응하는 방식은 결정적으로 국내의 정치적 고려사항에 따라 형성된다. 다시 말해, 세계 무대에서의 전쟁, 무역 관계, 국가의 태도 등과 같은 외부 행동이 국가 내부 역학의 결과라고 보는 주관주의적 관점(subjectivistview)이다. 이는 주류인 객관주의 관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객관주의 관점은 특정한 객관적 '힘'이 인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관점은 결국 일종의 신비주의로 변모하고 만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인류의 운명을 예정하는 역사의 철칙(the iron laws of History)을 믿는다.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가 상세히 지적했던 것처럼, 공산주의 이념은 공식적으로 무신론을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관은 기독교식 종말론에 깊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산주의 국제관계학 역시 역사의 정신을 구현한 세계 프롤레타리아가 지구를 지배할 운명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공리를 따른다. 

그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크렘린은 비교적 소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게 되었다. 스탈린주의 지배 엘리트들은 테헤란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연합국으로부터 동유럽을 양도 받았고, 국제 공산주의 혁명을 촉구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제거해버린 뒤 가만히 앉아 불가피한 과정이라는 세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정책은 '일국사회주의'(socialism in one country)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역사적으로 신중했던 차르(Czar)의 외교정책으로 복귀하기 위해 '국제주의'를 폐기하는 것으로 끝맺음했다. 

파시즘과 민족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국가가 반(半)신화적인 존재라는 환상을 불러 일으켰고, 확장주의 프로그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민족의 운명'이라는 신화적 주제를 들먹였다. 우익 집산주의자들은 경쟁자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불확실한 미래 대신 신화적인 과거를 내세웠고, 찬란했던 과거를 재건하겠다고 맹세했다. 무솔리니는 아비시니아, 알바니아, 리비아를 침공함으로써 옛 로마 제국을 재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은 그 시절을 샤를마뉴(Charlemagne)시대의 재림이라고 여겼다. 

우익과 좌익의 내러티브 모두 비록 중요한 부분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비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오직 집단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서만 인간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유럽의 이념은 미국과는 이질적인 것이었고, 수많은 동조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서양 너머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또다른 형태의 국가숭배가 태동하고 있었다. 하나는 19세기 미국을 휩쓴 종교부흥에 바탕을 둔 것으로 '지상의 천국'을 추구한 후천년설 기독교 경건주의 형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이것의 세속화된 형태로 '진보주의'(progressivism)라는 이념적 색채를 띠었다. 이로 인해 미국인들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복지국가가 부상했고 정부 권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외교 문제에서는 윌슨주의적 국제주의(Wilsonian internationalism)가 세계를 구원할 메시아주의(messianism)라고 떠받들었다. 미국의 신비로운 운명이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직접적으로 이익을 거둔 기업과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겉치레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마르크스주의자리버테리언 모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루스벨트(Teddy Roosevelt)가 내세웠던 간섭주의는 미드(Walter Russell Mead)가 분류한 범주 중 하나인 '해밀턴주의'(Hamiltonian)와 거의 흡사하다. 해밀턴주의에서는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이 특정한 기업의 이익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쿠바와 필리핀을 지배하는 제국의 길로 들어서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신뢰를 파괴하는' 진보주의자이자 모건(Morgan)의 꼭두각시인 루스벨트였다. 그의 허울좋은 민족주의는 전쟁에서 빛을 발했고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켰다. 국내 기업 로비스트들과 신생 방산복합체의 압력에 따라 과거 '고립주의'(isolationist) 국가였던 미국이 노골적인 제국주의 강대국으로서 세계 무대에 진입했다. 

더 최근에는 신보수주의자들(neoconservatives, 네오콘)이 루스벨트의 허울과 윌슨의 자만을 뒤섞어 더욱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 냈다. 이 혼종은 미국의 지성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요소들만 한 곳에 모은 것이었다. 이들은 외교 문제에서 메시아주의적 군국주의(militarism) 내세웠고 미국 외교 정책의 목표가 '범지구적 패권'(global hegemony)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다. 이러한 이념은 신보수주의가 사실 극좌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거꾸로 트로츠키주의로 진화하고 있음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또 '세계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치뤄진 부시(George W. Bush)의 전쟁 역시 그 심연에는 국제 공산주의 혁명을 향한 옛 레닌주의의 꿈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추세에 반발하여 '현실주의'(realists)가 부상하고 있다. 현실주의자들은 네오콘의 거창한 허세에 싫증을 내며, 미국이 '국가이익'을 좁은 해석에 근거하여 더 온건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자체는 존경할 만한 노력이라고 보지만 여기에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국가에게 일종의 집단적 '국가이익'이 있다거나 '명백한 운명'이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어떤 의미로도 현실적이지 않다. '국가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개인에게만 진짜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이익'이란 귀신처럼 그저 허황된 관념에 불과하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사람들, 즉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구체적인 개인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 개인들 혹은 지도자들은 이념이나 성격 면에서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그들 모두 공통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리버테리언 현실주의자들은 미국의 국제관계 흐름을 분석할 때 위의 원칙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실증적인 조사를 통해 관련 사실과 관계를 면밀히 파악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개인들과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핵심 의사 결정자들의 믿음, 야망, 망상, 특이성은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선악의 길을 결정한다. 

이 이론은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왜 필요하다는 것일까?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 이론이 필요하다. 물론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몇 가지 기초적인 공리들, 정치인은 오직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는 핵심 공리를 바탕으로 개연성 있는 매개 변수들을 확립할 수 있고, 제한적인 의미에서 향후의 과정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둔다면, 정계의 스타들이 중동, 특히 이란과의 전쟁을 위해 연합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어느 누구도 언제 첫 충돌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양당 정치 엘리트들의 일치된 이익 그리고 특정 해외 로비스트들과 그들이 심어둔 제5열의 치열한 물밑 작업이 우리를 범지구적 차원의 분쟁으로 빠르게 몰아넣고 있다. 

그러한 전쟁이 우리 일반 시민들에게 끔찍하고 파괴적인 만큼,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이 나라의 지배 엘리트에게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이익을 안겨준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과 어용 지식인들은 애석하게도 국민들에게 '단결'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단결'은 양당이 손을 맞잡고 전쟁의 길로 행진하며 첫 번째 폭격이 시작되는 순간 다시 되돌아올 것이다. 전시 '비상사태'가 워싱턴의 악명 높은 '교착상태'를 해소하고, 더 높은 세금과 가혹한 '사회 서비스' 삭감을 포함한 대타협(Grand Compromise)을 이뤄낼 것이다. 당연하게도 군사비 지출은 삭감하지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 광경일까? 

이것이 야기하는 매우 큰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시장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전쟁 발발에 따른 오일 쇼크가 세계 경제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로존의 붕괴와 '실패하기에는 너무 큰' 기업들의 피해가 대서양 너머까지 확장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경우라도 경제적 종말이 불가피하다고 믿는다면, 전쟁은 종말을 더 앞당길지라도 권력을 유지시킬 뿐만 아니라 크게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세계 경제가 고의적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생각은 한 가지 의문을 이끌어낸다.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난으로부터 큰 이익을 거두는 수많은 개인들의 리스트를 아주 손쉽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을 간단하게 '전쟁 정당'(War Party)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광범위한 범주를 설정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서 전쟁광들을 골라내는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안티워닷컴 역할은가지이다. 우리가 전쟁에 대해 어떻게 속고 있는지, 또 누구에게 속고 있는지 밝히는 것이다. 전쟁 정당의 기술, 구성, 동기를 연구하고 폭로하는 작업만이 세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돌진하는 것을 멈출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워닷컴 중요하다. '주류' 미디어에서 점점히스테릭하게 보도하는 전쟁 프로파간다를 효과적으로 파헤치고, 전쟁광들을 폭로하기 위한 교육 캠페인에 필수적이다. 

다른 지면에 써야 할 주제이기는 하지만, 경고의 의미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신보수주의 성향의 지적 불량배 패거리와 수상쩍은 '학자들'은 전쟁광들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전쟁을 향한 포효가 더 커질수록 '리버럴' 강경파들은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치고 그들의 형제인 신보수주의와 함께 완벽하게 대형을 이뤄 날아갈 것이다. 모든 무리가 독수리처럼 울부짖으며 전쟁터 위를 활공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태그 : #큰정부 #진보주의 #경찰국가

썸네일 출처 : https://internationalaffairsbd.com/unilateralism-in-international-rel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