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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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역설 (完)

해외 칼럼
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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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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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전쟁과_외교정책

원문 : The Paradox of Imperialism (게재일 : 2013년 6월 4일)
번역 : 한창헌 연구원


제국주의의 역설 목차 <펼치기>

부록: 민주평화론의 교리

지금까지 국가 기관이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고, 왜 국내에서는 자유주의적인 국가가 역설적으로 제국주의 강대국이 되는 경향을 보이며, 민주주의 정신이 전쟁 수행을 비문명화시키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았다.

더 구체적으로는 세계 제일의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부상과 건국 초기 귀족적 공화제에서 시작하여 남부독립전쟁 이후 무절제한 대중 민주주의로 이행한 결과 눈에 띄게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열렬한 전쟁광으로 변모한 미국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평화와 문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앞서 말한 국가와 민주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인 미국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민주주의가 평화를 위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우드로 윌슨과 1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민주평화론의 교리가 최근 몇 년간 조지 W 부시와 신보수주의 고문들에 의해 다시 부활했으며, 이제는 리버럴-리버테리언 진영에서도 전승되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민주평화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민주주의 국가는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 그러므로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세상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체로 언급하지 않지만, 민주평화론 교리의 필연적인 귀결은

  •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민주주의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 그러므로 그런 국가들을 민주주의 국가로 개종시키고, 그에 따라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한다. 

내게는 이 이론을 전면적으로 비판할 만한 인내심이 없다. 대신 이 이론의 초기 가정과 궁극적 결론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비판해보고자 한다.

첫째: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가? 20세기 이전에는 민주주의 국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는 지난 100년 안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 논지를 뒷받침하는 대부분의 증거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태평양 지역에서도 동시기에 일본과 한국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 민주평화론자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과학자'로서 '통계적' 증명에 집중하고 이 논지를 증명할 수많은 '사례'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독일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프랑스는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순서를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다. 독일은 프랑스를 침공하지 않았고 프랑스도 독일을 침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 60년 간 수없이 많은 증거를 확보한 셈이고 단 한 건의 반례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많은 증거를 확보한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우리는 단 한 건의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그리고 태평양 일대의 민주주의 일본과 한국)은 본질적으로 미 제국(US Empire)의 일부가 되었다. 이들 국가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그렇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화는 민주주의가 전쟁을 방지한 것이 아니라 패권국, 즉 미국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이 수많은 식민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또한 패권국은 위성 국가를 상대로 당연히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위성 국가들이 패권국에게 복종하기 때문이다— 위성 국가들은 패권국에게 감히 대들지 못하며 대들 필요도 없다.) 

한 실체가 다른 실체와 상이한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그 실체의 행동은 다른 실체와 독립적이라는 순진한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 실제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인식한다면 앞서 제시한 증거들이 민주주의와 무관한 증거이며 패권에 관한 증거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과 1980년대 사이, 즉 소련의 패권 통치기 동안에는 동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등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민주평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는 그렇게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결론은 틀렸다. 소련이 전쟁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미국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터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도 소련이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 간섭했듯이 미국도 과테말라처럼 많은 중앙아메리카 국가에 간섭했다. (말 나온 김에 생각해보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사이의 전쟁은 어떠한가? 이 국가들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가? 아니면 아랍 국가들은 정의상 비민주주의 국가로 취급하는가?) 

둘째, 민주주의 다른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가? 오직 평화에 대한 해결책일 뿐인가? 이 지점에서 더 큰 결함이 드러난다. 민주평화론자들의 수준 낮은 역사 이해는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본적 결함이 있다.

첫째, 민주평화론은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개념을 결합하는,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오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특히 자칭 리버테리언들이 민주평화론을 내세울 때는 더욱 가증스럽다. 자유의 기초이자 토대는 바로 사유재산 제도이고, 배타적인 사유재산—은 다수결 제도인 민주주의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완전히 무관하다. 민주주의는 온건한 공산주의의 일종이며 그 외의 것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사상사를 통틀어 거의 없다.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해보자면,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즉 20세기 이전에 정부(국가)의 세금 지출은 (모든 형태의 정부구조를 통틀어서) 서유럽에서는 국내 생산의 7-15%였고, 아직 신생 국가였던 미국에서는 그보다 더 낮았다. 본격적인 다수결 제도는 100년도 안 되는 세월만에 이 비율을 서유럽에서는 50%로, 미국에서는 40%로 끌어올렸다. 

둘째, 민주평화론은 본질적으로 오직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만을 구별하고 비민주주의를 모두 독재정권이라고 일축한다. 따라서 귀족적 공화제 국가 뿐만 아니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목적인 모든 전통적 군주제 국가까지 잊혀지고 말았다. 이제 모든 군주제 국가가 레닌,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마오 정권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사실 전통적 군주제 국가는 독재 국가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반면에 민주주의 국가는 독재 국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군주제 국가는 계층적으로 구조화 된 자연적—무국가적—사회질서의 반-유기적 결과물이다. 왕은 대가족, 일족, 부족, 민족의 수장이었고, 자연적이고 자발적으로 인정 받았으며 세대를 거듭해 상속하고 축적해 올린 권위를 행사했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가 처음 탄생하고 번성하기 시작했던 군주제(그리고 귀족적 공화제) 사회질서의 틀이다. 반면에 민주주의는 평등주의적이고 재분배주의적이며, 그에 따라 앞서 언급했듯이 20세기 국가 권력의 성장에 이바지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한 군주제 시대로부터 민주주의 시대로의 전환 속에서 리버럴 집단의 쇠퇴와 모든 종류의 사회주의 집단의 번영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셋째, 적어도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민주평화론자들이 제1차 세계대전 같은 대혼란에 대해 가진 견해가 그로테스크하다고 여겨야 한다. 민주평화론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독재정권 간의 전쟁이며,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이 전쟁은 진보적이고 평화증진적이며 궁극적으로 정당화되는 전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전쟁 이전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동시기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국가가 확실히 아니었다. 하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독재 국가 역시 절대로 아니었다. 이 국가들은 (점점 약화되어 가는) 군주제 국가였고 어쩌면 상대국가들보다도 더 자유주의적인 국가였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반전운동가들이 투옥되었고, 독일어 사용이 완전히 불법이었으며, 독일계 시민들은 공공연하게 괴롭힘 당하고 개명하도록 강요받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이와 비교할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어떤 경우에서든 민주주의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으킨 성전의 결과는 세상을 이전보다 덜 자유주의적으로 만들었다. (또 베르사유 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다.) 전쟁 이후 국가 권력은 그 이전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 기간 동안에는 소수민족에 대한 처우가 더 나빠졌다. 예를 들어 새로 건국한 체코슬로바키에서는 독일인들이 주류 집단인 체코인들에게 조직적으로 박해받았다. (독일인 박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백만 독일인이 추방당하고 수만명이 학살당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전 합스부르크 치하의 체코에서는 이와 비교할 만한 벌어지지 않았다. 전쟁 전 오스트리아와 전후 유고슬라비아에서 독일인과 남부 슬라브인 간의 관계는 이와 상황이 비슷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제국 치하에서처럼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도 소수민족은 꽤 잘 대우받았다. 하지만 다문화 사회였던 오스만 제국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해체되고 그리스, 불가리아 등등 반(半)민주주의 민족국가로 대체되면서 기존의 오스만 무슬림들은 추방당하거나 몰살당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에서는 연방 정부가 남부연합을 군사적으로 정복하며 민주주의의 승리를 거머쥔 이후 평원 인디언(Plains Indians)을 말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미제스가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는 다민족 사회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평화를 창출하는 대신 분쟁을 촉발하고, 잠재적으로 [민족 단위의] 대량 학살로 향하는 경향을 가진다.

넷째, 이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민주평화론자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인 '균형'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에 "역사의 종말"이라고 이름 붙인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표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 주장이 명백히 틀렸음을 입증하는 압도적인 증거가 존재한다.

이론적 기반에 관해서 살펴볼 때, 민주주의 사회체제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독재 정권으로, 즉 불안정한 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안정적인 균형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게다가 경험상 미루어볼 때 민주주의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다문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정기적으로 소수민족 차별, 억압, 심지어는 추방과 학살로 이어지곤 하는데, 이는 평화로운 균형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또 민족적으로 동질적인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계층갈등으로 이어져 경제 위기를 낳고 또 독재 정권을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정 이후의 러시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바이마르 독일, 스페인, 포루투갈을 떠올려보라. 좀 더 최근에는 그리스, 터키, 과테말라, 아르헨티나, 칠레, 파키스탄이 있다.

민주주의와 독재의 밀접한 상관 관계는 민주평화론자들에게 큰 골칫거리일 뿐만 아니라, 더 나쁜 것은 민주평화론자들이 고전적 자유주의나 리버테리언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 위기에서 탄생한 독재정권이 [독재정권의 탄생이 아닌] 다른 결과가 초래했을지도 모를 것보다 항상 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독재 정권이 [대중들에게] 더 선호되고 [경제적, 국제적] 상황을 개선시켰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와 무솔리니 혹은 스페인과 프랑코를 떠올려보라. [역주: 예를 들어, 프랑코 정권은 초기에 전형적인 국가사회주의 정책을 펼쳤었다. 보호무역, 환율 통제 등의 정책들을 펼쳤으나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고, 내전 후유증으로 인한 식량난 등이 겹쳐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접어들었다. 프랑코 정권은 1950년대 들어서야 국가사회주의 정책을 포기, 시장 자유로 전환하였다. 시장 자유체제로 전환한 이유에는 여러 정치적 복합적인 상황이 겹친 것이 크다.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 결과 국가 통제였을 때보다 사정이 꽤 나아졌다.] 게다가, 우연히 왕가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귀한 신분을 세습받는 왕들과 달리 독재자들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매우 민주적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망상에 젖은 민주주의 옹호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레닌이나 스탈린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보다 확실히 더 민주적이었다. 아니면 히틀러를 떠올려보라. 그는 카이저 헬름 2세나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보다 확실히 더 민주적이었고 '인민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민주평화론에 따르면, 우리는 결국 (현대의) 독재 정권으로 변하는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왕이든 선동정치가든 상관 없이 해외의 독재자들과 전쟁을 치뤄야 하고, 해외 전쟁으로 끝없이 촉발되는 '비상사태'의 결과로 국가 내부 권력이 성장한 끝에 미국 스스로가 독재국가로 변모할 때까지 우리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감히 말하건데, 에릭 폰 쿠에넬트-레딘(Erik von Kuehnelt-Leddihn)의 조언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신에, 민주주의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국가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다.


태그 : #큰정부 #인식론

썸네일 출처 : 1939년 1월 26일, 스페인 내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군대가 바르셀로나 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