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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8월호] 야마가미 사건: 정부 실패 대 민주주의의 패배

국내 칼럼
사회·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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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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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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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피격 사망했다. 총격범은 야마가미 데쓰야(41)로 전직 자위대 출신이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이번 사건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분노했다. 우노 시게키 도쿄대 교수는 이를 두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민주주의의 패배”라고 지적했다. 총격 사건에 뜬금없이 왜 민주주의 탓을 하고 있는가?

야마가미는 지역 명문고에 진학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4년제 대학은 진학하지 못했다. 그는 각종 취업용 자격증을 땄지만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관두기를 반복했다. 그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은 일본은 소위 ‘취업 빙하기’로서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일이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다. 게다가, 그는 어린 시절 부친의 자살, 지병·장애로 고생하던 형의 자살 등의 불행이 잇따랐다. 엎친 데 덮친 것은, 종교에 깊이 빠진 모친이 집안 재산을 내다팔며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는 것이다.

야마가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노동시장을 간략하게라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정규직 노동시장은 2014년에 저점을 찍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는 2020년에 3500만 명을 약간 상회했고 2014-2019년 기간에만 250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

다른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도 2007년에 대략 1700만 명에서 2020년에는 약 2200만 명(여기에는 ‘자발적’ 비정규직 노동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그 크기를 알 수 없다)으로 증가했다. 물론 2007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소 감소했던 기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수의 추세는 분명히 상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정규직 노동자 수의 60%를 넘고 있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내(社內) 실업자의 존재도 일본 기업과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2011년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그 수는 약 465만 명(전국 노동자의 8.5%)에 이르고 다른 조사에서는 2025년까지 500만 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사내 실업자란 정규직 노동자로서 재직하고 있지만 재직하고 있는 기업에서 할 일이 없거나 하던 일을 잃게 된 노동자를 말한다. 사내 실업자는 종업원 규모 1000명 이상 대기업, 50대 남성, 기획 또는 영업 부서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내 실업자가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 있는가는 불분명하다.

기업 차원에서, 사내 실업자의 존재는 일본 고유의 ‘장기고용, 연공서열제’의 노동시장 관행에서 비롯되어 왔다. 그러나,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세 번의 큰 경기변동이 사내 실업자와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다(그 이전에도 경기변동이 발생했고 사내 실업자를 만들어냈지만 상대적으로 덜 심각했다). 세 번의 경기변동이란 버블경기(호황기: 1985-1990, 불황기: 1991-2001(소위 ‘잃어버린 10년’), 이자나미 경기(호황기: 2002-2007, 불황기: 2008-2012), 아베노믹스경기(호황기: 2013-2018, 불황기: 2019-?) 등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경기변동은 통화공급의 증대에 따른 것이다. 물론 사내 실업자를 양산한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경기변동에 비할 바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세 번의 큰 경기침체가 사내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경제 내에 구조화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수를 심각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야마가미와 같은 고졸자가 정규직 일자리는 고사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를 잡는 일마저도 쉽지 않았을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본 보통 사람들은 아베에 대한 추모를 하면서도 야마가미에 대한 동정심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는 것일 것이다.

1975년 이후 1991년까지는 세출이 세입을 한 해도 예외 없이 초과했지만 재정적자는 연간 20조 엔 안팎의 수준으로서 크게 염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고령화로 인한 복지 부담은 증가했지만 불황으로 세입이 감소하면서 재정적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전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특별공채를 발행했지만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던 때는 1998년이다.

2021년 6월 현재 국채와 차입금 등을 합친 일본 정부의 빚은 1220조 엔을 넘어섰다. 그 결과로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20년에 무려 256%에 달하고 OECD 평균(80%)의 3배 이상 으로 높은 수치이다. 일본 정부 발행의 국채는 2021년 6월 현재 약 1/2을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약 1/2을 민간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일본은행이 보유하면서 통화공급이 증가하게 된다. 즉, 적자재정이 통화공급 증대를 초래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해외 투자자가 보유한 몫은 국채의 7%밖에 되지 않는다(이것이 외국인 투자자 발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전체 예산의 33.6%를 사회 보장비에 지출하고 22.3%는 국채를 상환하는 데 썼다. 정부 지출의 약 1/4은 순전히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 예산의 약 1/3은 생산은 하지 않으면서 세금으로 소비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출의 이런 구조는 정부 지출(2021년 전체 예산의 55.9%)이 경제의 암 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그 덩어리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유로도 야마가미의 살인 행위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부가 결정하는 화폐정책, 재정정책 등은 한 개인이 마땅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여건’ 또는 ‘환경’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만약 일본 정부가 지난 40여 년 간 더 좋은 경제정책(그런 정책은 많지 않지만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을 시행했다면 일본 노동시장은 앞에서 언급했던 상태보다도 더 좋았을 것이고 야마가미의 삶도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물론 이것은 ‘반사실적 사실’(counter-fact)이다. 그러나 반사실적 사실로도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정책 차원에서, 야마가미 사건은 일본 정부 경제정책의 실패, 더 멀게는 경제제도의 실패에서 왔다.

끝으로, 일본 경제는 이미 회생 가능한 임계점을 넘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일본 경제의 회생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렇게 해서 야마가미 사건과 같은 것이 재발하지 않게 하려면, 작금의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학파종합을 폐기하는 것이 최선임을 첨언하고 싶다. (여기 나오는 통계 자료는 ‘이창민, 『지금 다시, 일본 정독』, 더숲, 2022’에서 왔다. 다만 자료의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태그 : #간섭주의 #주류경제학비판 #세금과_지출

썸네일 출처 : '궁금한 이야기 Y'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 관련 이미지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