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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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진보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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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2-08-1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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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von Mises | American economist | Britannica

Ludwig von Mises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20세기에 가장 명성이 높았던 경제학자이자 사회철학자 중 한 명이다. 길고 생산적인 삶을 살면서, 그는 개별 행위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하여 목적 지향적으로 행동한다는 근본적인 공리(axiom)에 바탕을 둔 통합된 연역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의 경제분석 자체는 —경제학자가 가진 가치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value-free)’이지만, 미제스는 인류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지속 가능한 유일한 경제정책이 무제한적인 자유방임(laissez-faire), 자유시장, 결코 방해받지 않는 사유재산권(the right of private property)의 행사,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그 영토 내의 시민과 재산의 보호로 엄격하게 제한함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주제 : #인식론
원문 : The Definition of Economic Progress (게재일 : 2018년 12월 11일)
편집 : 조윤 (오이타 대학교 건축학 전공 학생)

역사에 대한 현실주의적 철학의 해석이라면 완벽한 상태의 인간사라는 망상적인 관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삼가야 한다. 현실주의적 해석이 출발할 수 있는 유일한 기초는 근거는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가 느끼는 불편을 가능한 한 제거하려는 충동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조건을 평가한다. 용어의 윤리학적 의미에서 그들의 태도를 두고 물질주의적이라고 경멸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도덕주의자들이 그저 물질주의적인 만족이라고 경멸한 것과 비교했을 때 더 고귀한, 모든 지향점을 추구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일정 정도의 물질적 후생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단일한 유전적 또는 다원적 기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역사에선 중요성이 거의 없다. 비록 모든 인간이 한 종의 영장류의 후손이여서 그 영장류만이 인간이라는 종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해도, 우리는 아주 초창기에 지구 전 지역으로의 분산이 이 원래의 단일성을 다소 고립적인 부분으로 나누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수천 년 동안 이 각각의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과 거의 또는 전혀 교류를 맺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인간들의 다양한 그룹의 고립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최종적으로 현대적 판매 및 운송 방법의 발전이었다.

인류가 원래의 상태에서 현재의 상태로 진화한 것이 특정한 계통을 밟아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의 연속 속에는 통일성도, 연속성도 없었다. 역사적 변화에 성장과 쇠퇴, 진보와 퇴보, 개선과 쇠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은 역사학자나 철학자가 자의적으로 인간 노력의 종착점이 어떠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척하지 않는 한 더더욱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명의 성과가 좋거나 나쁘거나, 더 나아졌거나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한 일치가 없다.

인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물질적 성취에 대해 거의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대다수는 이 문명이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보장해주고 있는 더 높은 삶의 수준을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는 소규모의 일관된 금욕주의자 그룹이 아니라면,자신과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서구 자본주의의 물질적 장치를 누리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이 관점에서 '우리가' 초기 시대의 조건들을 넘어서 진보해 왔다고 주장한다면 그 가치판단은 다수의 가치 판단과 일치한다. 그러나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진보를 이런 의미에서 영원히 계속되게 만드는 법칙이 사건들의 진행에 만연해 있다고 가정한다면 대단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진보를 향한 내재적 경향이 있다는 학설을 논박하기 위해, 물질적 개선의 시기가 물질적 쇠퇴기나 정체기로 이어지는 옛 문명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역사적 진화의 법칙이 반드시 물질적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거나 최근 과거에 만연했던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 경제적 진보라는 것은 인구 증가를 능가하는 자본재 축척의 결과다. 만일 이 경향이 자본의 추가 축적 정지 혹은 자본 소모로 이어진다면 용어의 이러한 의미에서 진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가장 편협한 사회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지난 200 동안 일어난 전례 없는 경제 상황의 개선이 자본주의의 성취라는 점 동의한다. 최소한 누진적인 경제적 개선 경향이 사회의 다른 경제 조직에서도 계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사회주의의 옹호자들은 사회주의 체제가 어떤 종류의 경제 계산도 수립할 수 없기에, 생산체제를 완전히 해체시킬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개진되어왔던 모든 것을 잘못된 생각이라고 거부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경제 분석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옳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경제 개선을 향한 경향이 계속될 것이고 계속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태그 : #자본주의 #인간행동학

썸네일 출처 : 글로벌 포스코의 시너지, 대륙의 빌딩도 빛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