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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1월호] 문명교체와 수도권집중

국내 칼럼
역사
작성자
작성일
2023-01-01 00:00
조회
642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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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개항으로 조선왕조는 중국문명을 서양문명으로 교체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성은 그런 문명교체의 최일선이자 지방과의 연결고리가 되는 중심지였다. 게다가, 일제는 지배 기구인 조선총독부를 경성에 설치했는데 그런 조선총독부는 행정, 입법, 사법 권한을 모두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둔 일본군을 일단 유사시에 지휘할 수 있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조선총독부로의 권한 집중이 경성과 그 일대를 그 어느 때보다 정보, 인구, 자원 등을 집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1937년 일제가 한반도에서 소위 ‘군수공업화’를 시작하면서 그런 군수공장을 거의 대부분 서울과 인천 일대와 오늘날의 북한 지역에 집중 배치했기 때문에 수도권 지역에 정보, 인구, 자원 등이 집중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도시화가 거세게 진행되었지만 수도권 일대의 도시화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도시(시 또는 부) 인구는 1925년 85만 명에서 1944년 341.2만 명(1925년 대비 4.01배)으로 크게 늘어났다. 농촌 인구는 1925년 1867.3만 명에서 1944년 2248.9만 명(1925년 대비 1.204배)으로 증가했지만 도시 인구 증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서울과 인천을 합산한 인구(외국인 포함)는 1925년 39.9만 명에서 1944년 125.5만 명(1925년 대비 3.145배)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일제강점기의 한반도가 여전히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도시화와 수도권 집중은 한계가 있었다. 1930년, 1940년, 1949년 농업 종사자는 언제나 한반도 경제활동인구의 80%에 근접했다.

3공화국이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수도권집중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서울과 인천의 인구(=한국인+외국인)는 1949년에 171만 여 명에서 2015년에 1279만 여 명(1949년 대비 7.48배)으로 크게 증가했다. 동일 기간 남한 인구는 2019만 여 명에서 5101만 여 명(1949년 대비 2.53배)으로 증가했다. 서울과 인천 지역 인구 증가율은 남한 인구 전체 증가율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것은 3공화국 공업화의 시작이 대한민국 문명교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3공화국으로부터 본격화된 문명교체는 어떻게 되었는가? 자동차용 배터리를 예로 들어본다. LG그룹 구본무 전 부회장은 1992년 영국 출장 길에 2차전지 샘플을 들고 와서 럭키금속에 연구를 지시했다. 1995년 리튬이온 배터리 독자개발 선언, 1999년 양산 시작, 2009년 세계 ‘최초’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시작, 2020년에는 GM과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LG는 배터리를 30년에 걸친 노력 끝에 개발, 양산, 수출에 성공했다. 그동안 포기할 뻔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지만 구본무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그런 큰 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1992년에 한국은 2차전지 분야에서 후발주자도 그런 후발주자가 없었을 것이다. 그 때 한국은 이제 막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LG그룹은 이후 국내외 여러 곳에 생산 공장, R&D 센터 등을 구축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는 대전 이남에 그런 공장이나 연구센터를 짓지는 않았다. 당연히 배터리 컨트롤타워는 서울에 있다. 해외 공장이나 연구센터를 방문하기 위해 해외 출장이 잦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제공항이 서울 가까운 곳에 있음으로 해서 문명교체를 도와주지만 지방은 문명교체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LG와 같은 초거대기업이 아니라면 배터리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LG같은 초일류기업만이 배터리 관련 문명교체를 완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서울은 문명교체의 최전방이고 지방은 문명교체의 끝에 있다. 수도권집중은 그런 문명교체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조선왕조 말엽으로부터 자의반 타의반 문명교체를 시작한지가 150여 년이 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엔트테인먼트 부문 등에서는 한국이 문명교체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부문에서 대한민국은 아직은 ‘추종자’(follower)의 입장인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제약이 그런 부문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디지털혁명이라고 지칭되는 4차산업혁명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가? 아직은 추종자의 입장에 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교육, 의료, 금융, 물류와 운송, 공공기관, 사법, 정치, 국방 등은 어떤가?

문명교체를 해야 한다고 한 나라 내의 모든 부문에서 서양을 추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한국인, 한국 기업들, 한국 공공기관들, 한국 정부 부서들 등이 자기가 속한 부문에서 추종자가 아니라 '선두주자'(first-mover)가 될 때 그리고 지방의 경쟁력이 서울의 경쟁력과 대등해질 때 수도권집중은 멈출 것이다.

수도권집중 문제는 필히 원인에 대한 분석, 대책의 제시, 문제의 해결 등이 쉽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은 그 자체로 실패로 끝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사업본부를 금융의 중심지, 즉 서울에 두지 않고 전주라는 시골-금융이라는 관점에서-로 이전케 한 것은 패착도 그런 패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수도권집중을 위한 해결책을 다음 호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태그 : #간섭주의

썸네일 출처 :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61010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