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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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2월호] 문명교체와 수도권집중 (II)

국내 칼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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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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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한국사

2023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LG 배터리 사업은 민간이 어떻게 수도권집중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준다. LG 배터리 사업은 수도권집중이 이미 여건이 된 상황에서는 수도권집중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간단하지 않음을 또한 보여준다. 그러나 수도권집중과 같은 공공의 문제를 민간 기업인 LG가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다.

문명교체 과정에서 모든 경제주체는 부지불식간에 그런 문명교체에 실패할 수도 있다. 박정희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가장 크게 실패한 사례이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달리,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작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명교체의 실패 사례로 보아야 한다(여기에서 이 점을 자세히 다루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3공화국의 산업입지 정책과 맞물려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은 이윤과 손실에 의해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런 실패가 제한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결정하기 때문에 한 나라 경제 내의 모든 경제주체는 중앙은행이 만든 제도와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문명교체 과정에서의 실패는 민간 기업마저도 그 책임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세계를 휩쓸었던 제국주의는 전 세계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몰아넣었다. 그런 제국주의 때문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집단 중의 하나가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이다. 그런 사정으로 일제강점기의 문명교체는 너무 지지부진했을 뿐만 아니라 1867년 시작한 문명교체의 일부는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진실이다. 일본제국은 자신만을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라 식민지인 한반도도 경제와 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제없는 문명교체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서양문명이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지금도 서양문명의 일부는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한둘이 아니다. 서양문명이라는 것이 언제나 고정된 것이 아니란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의 적자성 채무는 2017년 말 374조8000억원이었는데 2022년 말 678조2000억원, 2023년 말 700조원 대에 이르고, 2025년 말에는 약 816.5조원, 2026년 말 866.1조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적자성 채무의 폭발적인 증대는 수도권집중의 원인들 중의 하나이면서 중요한 것이다. 이것은 케인스경제학에서 연유하는데 케인스경제학은 오늘날의 서양 주류경제학으로서 서양문명을 파괴해온 작금의 서양문명의 일부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도 서양문명의 일부였지만 주류경제학이 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작금의 서양문명은 환경오염 문제도 만들고 악화시켜왔다.

서양문명에서 중요한 요소는 민주정(democracy, 민주주의는 오역이다)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주요한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적 다수가 정치적 소수를 약탈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정치가가 공익과 사익을 잘 구분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교양 있고 합리적인 시민이 양성되어야 한다. 넷째, 언론의 자유가 확보되고 책임 있는 언론이 성장해야 한다. 조건이 추가될수록 민주정은 더 잘 작동할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조건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 국민은 민주정을 가장한 독재를 종식시켰지만 아직도 지속가능한 민주정을 정립하기 위한 위 네 가지 조건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조건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서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부가 커져서 국가가 멸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민주정이 지속 불가능하면 수도권집중과 같은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문명교체에서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국이 민주화에 성공했다는 주장은 민주정의 본질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헛소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수도권집중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1867-1894년 기간에 개혁은 가능했지만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개혁가들의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개혁 과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식민지배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형식적으로만 허용되었다. 1, 3, 5공화국도 전후 복구와 공업화에 집중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독재시대였기 때문에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형식적인 면에 중심이 놓여졌다. 노태우정부 이후 김대중정부까지 경제건설과 경제위기 해결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독재시대는 아니었지만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그 이전 정부와 대동소이했다. 노무현정부는 수도권집중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알았지만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건설함으로써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 세종시는 노태우정부 이래 최대의 패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일도 주의를 기우려야 할 점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이전토록 강제한 것은 최악의 예이다.

지금 지방분권과 지방차지를 실행한다면 주의 사항이 한 가지가 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한다고 조세권을 포함한 각종 규제 권한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게 ‘단순히’ 이전하는 것은 수도권집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아마도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런 내용일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합을 크게 하기 때문이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비교적 잘 실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 중앙정부의 재정적자도 엄청난 크기이지만 다수의 지방정부도 파산했거나 파산 직전이라는 사실을 그 점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수도권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중앙정부가 조세권을 포함한 각종 규제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그 중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는 권한을 이전하는 것이다.

박정희정권과 전두환정권의 산업입지 정책은 따로 다룰 필요가 있다. 박정희정부는 전라도 지역에 변변한 산업단지 하나 조성하지 않았다. 내륙지방 깊숙이 위치한 구미에는 산업단지를 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두환정부는 호남에 광양제철소를 착공하고 완공했다. 비록 그것이 포스코의 일부였지만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전두환정부는 박정희정부의 산업입지 정책을 보완했지만 불충분했다는 것이다. 노태우 이후의 정권은 전두환정부만큼도 호남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 비해 호남 사람들이 수도권에 더 많이 거주하게 된 것은 중앙정부의 산업입지 정책 탓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근대화 이후 서양세계에서 받아들여 교체해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인가? 서양문명의 핵심은 ‘자유’일 것이다. 이 때 자유란 일반적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정부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government)라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라는 경제학자, 사회학자, 역사가, 경제학 방법론자가 강조한 바 있다. 정부로부터의 자유는 궁극적으로는 ‘작은 정부’ 또는 ‘민간의 자치에 의해 설립된 정부’(anarcho-capitalism)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불행한 것은 지금까지 문명교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그런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간파하는 것마저도 실패했다. 예를 들어, 이승만 대통령은 그 자신은 자유로운 교육 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에서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로 불렀음) 교육을 통째로 공교육으로 만들고 사교육을 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교육에서 정부의 간섭을 너무 많이 실행했다. 초등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근래에는 사이버 학교 폭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학교가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인데 그것은 학교가 국공립 학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 교육의 최대의 문제는 정부의 간섭이고 그런 전통은 그 때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로부터의 자유는 작금의 불환지폐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불환지폐제는 정부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자유를 파괴해왔다.

서양을 포함한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국가주의자들인 현실에서 모든 정부는 필연적으로 큰 정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몇 정부는 기업가들의 제안에 따라 규제완화를 외치지만 정부가 커지는 것을 환영하거나 받아들였다. 규제완화와 큰 정부는 상호 모순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제대로 실천하면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거의 자동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그러면 수도권집중 문제도, 물론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국가주의자들이 점령한 세계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수도권집중도 그 원인이 있기 때문에 그 해결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면 그것이 바로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으로 이어진다. 수도권집중을 해결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리버테리어니즘이야말로 지구상의 어떤 정치철학보다 우수한 정치철학이다. 여기에서 우수하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 재산, 자유 등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현 시점에서 정부의 너무 많은 간섭과 규제(세금을 생각해 보라)가 우리 모두의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 : #간섭주의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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