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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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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 전쟁 범죄의 역사적 기원

해외 칼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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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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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David Gordon
대표적인 라스바디안(Rothbardian) 철학자인 데이비드 고든은 미제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UCLA에서 정신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머레이 라스바드의 삶과 사상, 그리고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의 철학적 기초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제스 리뷰(Mises Review)의 편집자로서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논문과 책들을 오스트리아학파의 시각에서 면밀하게 분석해왔으며, 리버테리어니즘을 대표하는 위대한 평론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주제 : #미국사

원문 : The Historical Origins of Modern American War Crimes (게재일 : 2021년 11월 1일)
번역 : 전계운

지난달에 나는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의 <인도주의>(뉴욕, 2021)을 리뷰했지만 그 책에서 몇 가지 주제만 다루었다. 이 책이 매우 중요한 만큼 다음 글에서는 많은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모인 책의 주요 주제는 전쟁을 인도주의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전쟁을 종결해야 하는 더 중요한 과제를 망치거나 적어도 전쟁을 대폭 축소하려는 과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인은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면서 전쟁을 제한하는 규정과 조약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최근의 일이며, 심지어 지금도 이 규정과 조약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 전에는 이러한 규정과 조약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고 모든 종류의 잔혹한 전쟁 행위가 허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독자들이 이미 접해본 바가 있는 요점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으로 인해 많은 끔찍한 행위가 발생했는데, 이 문제에서 독일 이민자 출신 프란시스 리버가 쓴 미군 행동 지침인 ‘리버 강령’의 역할에 대해 모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리버는 전쟁의 희생자를 동정하기를 거부했다. 리버의 강령은 충격과 공포를 합법화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인도주의는 진정한 목표라기보다는 부차적인 이익이었다. ...훗날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추대된 리버는 전쟁을 인도적으로 치르자는 전통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민간인을 처벌하고 적이 항복해도 자비를 베풀지 않고 죽이는 끔찍한 행위를 묵인했다.” (19-20페이지)

이와 관련하여 리버가 국가를 신성시하는데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점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마르코 바사니는 그의 훌륭한 저서 <Chaining Down Leviathan>(여기에서 리뷰했다.)에서 리버의 정치윤리 매뉴얼을 인용하고 있다. “국가는 인간과 함께 태초부터 존재해왔으며, 자발적으로 선택한 조직이 아니다...국가는 인류가 더 나은 발전을 이루기 위한 인간의 형태와 능력이며, 인간의 영광이다.”(Bassani, p. 292)

리버가 권장한 군사 전술은 아메리칸 인디언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이례적일 정도로 가혹하게 적용되었으며,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제국을 지향하게 되자 미군은 필리핀의 저항 세력을 반항적인 인디언처럼 간주했다.

“1901년 7월 [아서] 맥아더의 뒤를 이어 [필리핀] 군사 총독으로 부임한 [애드나] 채피는 리버 강령의 근간이 되는 접근 방식 즉, 강도 높은 전쟁이 장기적으로 최선이며 이를 통해 불안해하는 상대방이 항복하도록 유도하고 분쟁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접근 방식을 충실히 이어갔다. 그는 ‘아메리카 인디언 전쟁’의 전통을 따라서 [군사] 정책 옵션을 연속선상에 있어서 강도를 더욱 확대해 나갔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법에 직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는 간혹 농작물을 불태워버리고, 동물을 죽이고 사람을 포함하여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의 반란 진압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필리핀인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거나 법에 따라 비전투원으로 분류된 사람도 여전히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리버의 강령이 금지하지 않은 보복에는 제약이 없었다. ‘나는 실제 적대 행위에서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길 원한다.’ [제이콥] 스미스는 자신의 군대에게 이를 명령하면서 10세 이상의 남성을 의미한다고 명시했다. (p. 113; for US policy in the Philippines, in addition to the sources Moyn cites on p. 346, Alfred McCoy’s Policing America’s Empire 참조)”
아메리카 인디언 전쟁의 유산은 그로부터 50년 뒤인 한국전쟁에서도 계속되었다.
“한국전쟁은 실제로 또 다른 ‘인디언 전쟁’이었다. 맥아더 가문 전통에는 태평양 식민지의 통치만 있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더글라스 맥아더는 자신의 아버지가 서부 국경에 백인의 법과 질서를 가져오고 인디언을 남서부 건조한 산지로 몰아넣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로튼 콜린스 장군은 <뉴욕타임즈>와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에서 요구된 ‘옛날 스타일의 전쟁으로의 회귀’는 ‘현대전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인디언 전쟁 시기와 비교할 만하다’고 밝혔다.” (pp. 152-53)

베트남 전쟁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초창기 태평양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은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군사행동을 ‘인디언 전쟁’과 비교했다. 미국군 사망자 5만 7천 명인 데 비해 베트남인 사망자는 400만에서 600만 명에 달했다. 현지 주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한국만큼 심각하진 않았고, 전쟁 기간도 더 길었지만, 이것이 많은 것을 말해주진 않았다.” (p.168)

미국의 위대한 사학자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는 1898년 ‘스페인의 미국 정복’이라는 강연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미국인들은 처음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교리에 충실해 왔다. 우리가 살아오며 본 미국인의 힘들이 국내 교리로 옮겨가면서 미개하거나 부분적으로 문명화된 민족에게 적용하고 반드시 시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 교리가 처음 시험대에 직면하게 되자 우리는 교리를 버렸고, 스페인의 교리를 택했다. 우리는 모든 제국주의자들에게서 미개하거나 부분적으로 문명화된 민족들은 자유와 자치에 적합하지 않고, 그들이 우리의 선행에 저항하는 것은 반역이며, 그들이 저항을 할 경우 함대와 군대를 보내서 죽여야 한다고 들었다.”

새뮤얼 모인은 미국 외교 정책에 있어서 이 주제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점에 대해 큰 찬사를 받아야 하며, 우리의 관심을 이끈 그의 저작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우리의 노력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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