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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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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6월호] 합리적 기대 가설과 경제 정책의 효과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3-06-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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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인간행동학

2023년 미제스 와이어 목차 <펼치기>

‘합리적 기대 가설’로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명예교수가 지난 달 15일(현지시각) 타계했다. 그의 가설은 개인과 기업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정부 개입 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루카스는 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연구를 한 것인가?

경제주체들이 합리적 기대를 가질 것이라고 가정하면 정부 개입 정책의 효과가 없을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현실의 인간은 각자 다른 기대를 하게 되고 그리고 각자 다른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행위에서는 후자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기대의 형성과 적응 능력은 각자 다르고 경제 내에서 ‘내생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루카스처럼 기대의 형성을 ‘외생적인’ 것으로 다루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그의 합리적 기대 가설은 기대의 형성을 외생적인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현실을 이해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물론 모든 경제주체가 동일한 기대, 그것 중에서도 합리적 기대를 가지면서 동일한 적응 능력을 가지고 행동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만 그의 가설은 의미가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특정 조건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합리적 기대 가설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비판의 핵심 내용만 설명 없이 요약한다. 첫째, 합리적 기대 가설은 과거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기대에 대한 심정학(Thymology, 心情學: 심정학이란 역사학의 일부로서 이해 또는 특정한 이해라는 방법을 통해 인간의 동기 또는 목적, 인간의 감정, 아이디어, 가치와 의지에 대한 판단 등의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적 직관과 모순된다. 둘째, 정치가들이나 정부가 사람들이 가진 지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사람들이 가진 잘못된 경제이론들이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강화(약화)할 수 있다. 셋째, 합리적 기대 가설은 선험적 이론인 경제이론과 심정학적 경험을 얽어 짬으로써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므로 행동하는 인간들이 합리적 기대를 가질 때만이, 오직 그 때만이 합리적 기대 가설이 유효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기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적응적 기대’(adaptive expectations)라는 것이 있다. 적응적 기대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를 경제주체들의 과거에 일어났던 과오에 기초하여 형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현실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일부 경제주체는 적응적 기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적응적 기대는, 합리적 기대 가설과 달리, 기대의 형성을 내생변수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기대 형성 과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

적응적 기대에 대해서는 세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은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치평가와 계획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그것들을 평가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적응적 기대에서 인간은 자신의 과오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전제되고 있다. 기대를 형성하는 방법에 있어서 적응적 기대는 비실재적(unrealistic)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적응적 기대에서 경제주체들은 모든 원인적인 요소들을 조사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적응적 기대에서 경제주체들은 경제 변수의 미래 가치를 예상함에 있어서 그들이 한 과거의 과오로부터 기계적으로 외삽(extrapolate)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진실이다. 따라서 적응적 기대의 전제는, 합리적 기대 가설과 마찬가지로, 심정학적 경험 또는 지식과 배치되는 것이다. 즉 적응적 기대의 두 번째 전제도 비실재적이라는 것이다.

셋째, 적응적 기대는 암묵적이지만 동일한 인간을 가정하고 있다. 이 가정은 예측하고 적응하는 능력에 있어서 인간들은 큰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차이가 변화무쌍하다는 심정학적 경험과 모순된다.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 인간은 다양한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차이가 자주 변하지만 적응적 기대는 이 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대가 경제활동을 포함한 인간의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만 ‘기대가 형성되는 방법’과 ‘기대가 인플레이션 과정에 미치는 역할’에 대해 연구한 경제학자는 많지 않다.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그 두 가지에 대해 중요한 학문적 공헌을 한 많지 않은 연구자들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미제스의 기대 형성 방법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실에서 인간은 심정학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사회·경제적 요소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한다. 이 때 미래 예측이란 미래에 대한 ‘특정한 이해’(specific understanding)를 말한다. 물론 미래에 대한 특정한 이해는 개별 경제주체들의 기업가적 능력(entrepreneurial abilities)에 달려 있다. 이 점을 미제스는 ‘Theory and History'(1957)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가치평가와 계획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그것들(다른 사람들의 가치 평가와 계획을 말함, 필자주)을 정확히 평가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대가 형성되지만 그런 과정은 모두 다르고 언제나 다른 기대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

미제스가 제시하는 기대는 심정학적 지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학-역사학도 인간행동학의 일부임-의 일부이고, 예측하는 사람의 투기적 예측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간행동학의 일부이며, 바로 그 이유로 기대와 기대형성 방법은 인간행동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경제학의 일부는 아니다. 그리고 미제스는 미래에 대한 이런 기대 또는 예상을 ‘미래에 대한 특정한 이해’라고 불렀다.

미제스가 제시한 기대이론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레르노(Salerno)라는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더 넓게는, 미제스의 기대 이론은 경제이론을 설명함에 있어서 역사적 연구(특정한 이해를 말함)와 심정학적 연구의 적절한 역할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길을 연 것이다.”

여기에서 정부가 기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본다. 정부(중앙은행 포함)는, 다른 경제주체보다, 선전·선동에 경우에 따라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정부는 선전·선동을 행한다. 다만 그 정도가 정부의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화폐를 증가시켜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특히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에 합리적 기대를 하는 사람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보상하기 위하여 부동산을 매입하고자 한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이 큰 이득을 획득하고자 하는 투기자들에 의해 발생했다고 믿는 사람은 그 가격이 곧 하락할 것임을 예상하고 부동산 매입을 자제할 것이다. 이 때 정부가 투기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투기를 단속한다. 정부의 그런 선전에 의해 투기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는 지식을 민간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인플레이션은 그 시점에서 어느 정도 진정되게 된다. 즉 정부의 선전·선동이 사람들의 지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경제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됨을 알 수 있다. 물론 투기 단속은 선전·선동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나 정치가들은 민간 경제주체들이 가진 잘못된 지식을 이용하여 합리적 기대를 형성하는 것을 막게 되거나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대를 형성하도록 만든다. 이 때 정부는 통상적으로 이자율을 인상하여 통화량의 증가를 억제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이 더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는 일을 병행할 수 있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역사이다.

민간의 기대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형성되도록 정부는 선전·선동을 행한다. 민간 경제주체의 기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정부는 큰 역할을 하게 되고 그 때 민간이 가지게 되는 기대는 정부가 원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대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에는 반복해서 선전·선동을 실행한다. 이것은 민간들의 기대 형성에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 마디로, 정부가 기대 형성에 영향을 미쳐 경제 정책의 효과를 일정 부분 조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기대 가설은 그 점을 근본에서 부정한다.

노벨상은 매우 권위 있는 상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 가설은 현실 설명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노벨상이라는 권위 때문에 훨씬 더 설명력이 있는, 그래서 정부의 경제 정책 효과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미제스의 기대 이론이 어둠 속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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