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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9월호] 왜 미국 흑인들은 아직도 킹 목사의 꿈이 멀기만 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소득 불평등과 경기변동, 그리고 화폐·금융제도

국내 칼럼
경제학
작성자
작성일
2023-09-01 15:37
조회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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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경기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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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8일은 60년 전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1929-1968)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외치며 인종차별 철폐를 요구했던 날이다. 미국의 흑인 인종차별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 미국 흑인들은 아직도 킹 목사의 꿈이 멀기만 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번 9월호에서는 미국 흑인 인종차별의 경제적 원인을 분석해보고, 역사적 원인을 검토하며, 최근 미국 대법원이 대입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폐지한 데 대해서 평가해 보기로 한다.

최근 미국에서는 소수 민족을 포함한 흑인과 백인 인종 간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아 정치·사회적 갈등이 번지는 상황이다. 인종 간 격차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격차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소득 격차일 것이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흑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미국 전체의 약 68%(2021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백인과 비교하면 65%, 아시아계 대비는 48%에 불과하다.”(조선일보 2023년 8월 28일자 재인용) 킹 목사의 손녀 욜란다 르네 킹(15)이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빈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한다”고 말했을 때 정곡을 찌른 것이다.

흑백 인종 간 갈등은 정치·경제·사회적 측면 모두 관련이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소득 격차에 초점을 맞춘다. 흑백 간 소득 불평등의 경제적 원인은 무엇인가? 소득 불평등을 초래하는 경제적 원인마저도 너무 많아서 여기에서 모두 다루는 일은 쉽지 않다. 말할 것도 없이, 소득 격차의 정치·사회적 원인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경제적 원인 하나만 꼽는다면 ‘경기변동’(business cycle)일 것이다. 경기변동은 붐과 버스트(위기 포함)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은 악화하게 된다. 경기변동에서 위기의 크기와 기간에 비례하여 소득 불평등은 악화한다. 문제는 미국에서 그런 경기변동은 10-20년 주기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경기변동 사례만을 보아도, 1990년대 닷컴 버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경제 위기, 2019년 코로나와 동시에 발생하여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경기변동 등이다.

경기변동의 궁극적 원인은 불환지폐 제도와 부분지급준비 제도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 불평등 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현재의 화폐·금융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이것이 인종 간 소득 불평등이 악화하고, 그 결과 흑백 간 갈등이 멈추지 않는 원인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인종 간 소득 불평등 문제가 경기변동에 의해 악화되고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 그래서 그것이 현행 화폐·금융 제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른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노예해방 이전에 미국 흑인 노예들은 자신들의 임금을 백인 노예주들에게 착취당했을 뿐만 아니라 재산권 침해와 인권도 유린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착취, 재산권 침해, 인권 유린 등의 정도는 개인마다 달랐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했을 때 그런 것들은 모두 불법화되었다. 그러나 노예해방이 링컨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지만 해방 이전에 자행된 착취, 재산권 침해, 유린 등에 대한 배상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링컨 대통령의 잘못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치르느라 그런 겨를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이 링컨과 후대 미국 사람들의 잘못임은 분명하다. 이제 흑인 노예들은 해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그런 자유를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힘(power) 또는 경제적 능력이 없게 되었다(여기에서 자유와 힘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예해방 이후 흑인들은 맨 손으로 백인들을 포함한 다른 인종들과 경쟁해야 했고 그 결과는 대를 잇는 소득 불평등의 악화와 지속이었다. 물론 이것은 평균적인 것이다. 개인은 모두 다르다.

노예라는 신분이 얼마나 개별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는 사회마다 시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경우에, 1894년 갑오개혁에서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혁파되었지만 실제로 노비가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 때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이다. 일제강점기에 양반을 포함한 개인들의 일부는 노비를 소유했는데 그렇게 된 데는 노비 자신이 경제적 독립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스스로 노비 신분을 유지하기를 원했던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농촌에서 해방된 노비 일가족은 경성(京城)으로 상경했지만 미숙련 노동자에게 일자리는 흔하지 않았고 미숙련 여성 노동자는 더욱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경성에서는 집 가격이 너무 비싸 경제적 능력이 약한 노비 가족이 집을 구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셋방을 사는 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들은 문간방이 있는 부자집에 입주하여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노동 서비스를 제공했다. 여자는 주인집의 정규직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남자는 행상을 하거나 품팔이를 했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때는 주인집에서 남자가 필요한 일을 도왔다. 192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한 농민 또는 경성 거주 빈민이 우선 손쉽게 주거문제와 취업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던 방법이 셋방(貰房) 또는 행랑(行廊)살이 또는 청랑살이였다. 이들은 법적으로 신분이 해방되었기 때문에 재산권 침해, 인권유린 등은 적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비나 다름없었다. 이것은 노비 또는 노예가 신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하더라도 힘 또는 경제적 능력을 가지는 것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과거 노예였던 사람들의 경제적 능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토지 4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를 흑인들에게 배상(?)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최근 미국 대법원이 대입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폐지했다. 경기변동으로 유발된 소득 불평등을 대입 소수 인종 우대 정책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소(즉 소득 불평등)를 잡기 위하여 닭 잡는 칼(즉 대입 소수 인종 우대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다. 미국 대법원은 소득 불평등에 관한 한 아주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다만 그런 정책은 화폐·금융제도의 개혁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존치되어야 한다.

미국을 포함한 서양이 화폐·금융제도를 잘못 만듦으로써 미국에서 긴 시간에 걸쳐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어 왔거나 개선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흑백 인종 차별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문제 있는 제도들과 함께 말이다. 대한민국도 미국의 화폐·금융제도를 복사한 것이기 때문에 두 제도가 폐해를 만들어낸다. 이 점에 대한 분석은 추후의 과제로 한다.


태그 : #미국경제 #한국경제 #호황과_불황 #중앙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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