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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11월호]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라는 말의 정치철학적 의미

국내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3-11-01 00:35
조회
529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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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삼성의 고 이건희 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이건희 회장의 말 중에서 마지막 말은 지난 달 말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가 국민의 힘 혁신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인용함으로써 또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됐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다 바꾼다. 기업가이자 철학자인 이건희 회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만약 그의 말이 기업을 향하고 있다면 매우 단순하다. 기업의 경우에는 ‘이윤’이라는 잣대가 있으니 투자, 경영 등에서 그것을 적용하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이윤에는 단기 이윤도 있고 장기 이윤도 있으니 이윤의 종류에 따라 원칙도 다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통상적인 것보다 복잡한 경우이지만 이 회장 말의 적용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면 인요한 교수가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는 여당에 대고 그런 말을 했지만 그 말은 필자에게는 사실은 작금의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말인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건희 회장은 그의 말을 정치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우리와 같은 후대 사람들에게 지적해주지 않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꾼다면, 정치도 바꾸어야 할 대상임은 분명한데도 말이다. 다만 이 회장은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 회장은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치를 4류로 규정함으로써 어느 부문보다 바꿀 것이 많다는 점을 암시했다. 그리고 그는 1류의 정치가 무엇인가도 규정하지 않았지만 그 1류는 지금의 정치보다 자유가 더 많이 들어간 무엇일 가능성을 또한 암시했다. 그러나 후자는 필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간섭주의, 사회주의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역사에서 더 많은 경제체제가 명멸했지만 세 가지로 구분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정치체제는 군주정, 민주정(democracy를 민주주의로 번역하는 것은 명백히 오역이다), ‘아나코-자본주의’(anarcho-capitalism)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민주정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정치체제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민주정의 대표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오늘날 어떤가? 작금의 대한민국의 민주정은? 이회장의 말대로 한국 정치가 4류인 것은 정치체제인 민주정 자체가 그렇게밖에 될 수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나코-자본주의란 정부의 기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지만 민간들(민간단체 포함)이 그런 기능을 수행하고 그런 민간들은 주권자들의 완전한 통제 하에 있게 된다. 그와 반대로, 오늘날의 정치체제는 정부가 스스로 폭력을 소유하고 휘두른다. 이 점이 아나코-자본주의와 근본에서 다른 것이다. 즉 아나코-자본주의란 흔히 말하는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그런 사회가 과연 존립했던 적이 있었는가? 아나코-자본주의는 너무 이상적이지 않는가? 역사에서, 고대 켈트 아일랜드가 아나코-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켈트 아일랜드에는 오늘날 개념의 국가나 그와 유사한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피든(Peden, 1977)은 그런 사회를 아주 명쾌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영국, 미국 등에서, 민자 도로, 민간 경찰 등이 정부 도로, 정부 경찰 등보다 언제나 잘 운영된 사례는 너무 많다. 아나코-자본주의에서 경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군주정은 말할 것도 없이 민주정도 훌륭한 정치체제가 아니다. 또 그렇게 되기도 무척 어렵다. 디지털 문명적 요소가 많아질수록 민주정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금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4류의 정치를 확 바꾸고자 한다면, 정치를 1류로 만들고자 한다면 이제 유일한 대안은 아나코-자본주의 뿐이다.

필자는 고 이건희 회장의 말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30년 전에 했던 그 말은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 한국 사람이면 누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이 있었겠는가? 최근 인요한 위원장이 그 말을 다시 던지면서, 이건희 회장의 말의 정치철학적 함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 당장 아나코-자본주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등대가 되어야 한다.


태그 : #아나코캐피탈리즘

썸네일 출처 : https://news.nate.com/view/20201025n09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