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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유럽의 첫 평등주의 독재자

해외 칼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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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12-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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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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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an McMaken
라이언 맥메이큰은 미제스 연구소의 편집장이다.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콜로라도 주정부에서 10년 동안 주택 담당 경제학자로 근무하였다.

주제 : #인물평가

원문 : Napoleon: Europe's First Egalitarian Despot (게재일: 2023년 11월 22일)
번역 및 편집 : 전계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새 영화 나폴레옹이 개봉하면서 관람객들은 나폴레옹 전쟁의 격변기 속 격정적인 로맨스에 사로잡히게 된 한 영화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개봉으로 인해 프랑스 군 사령관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 역사속에서의 나폴레옹을 궁금해 하고 있다. 유럽인들과는 다르게 학교에서 나폴레옹에 대해 배우는데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나폴레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첫 시간이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 궁금증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은 히틀러처럼 평판이 좋지 않다. 역사책을 평생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나폴레옹을 좋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평상시에 나폴레옹이 조지워싱턴처럼 인자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폴레옹의 족적은 의견일치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나폴레옹: 폭군인가 아니면 천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라는 제목의 프랑스24 기사가 언급했듯이 프랑스에서도 일치 된 의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는 나폴레옹의 족적은 “복잡”하다며 그를 영웅으로 간주해야할지, 독재자로 간주해야할지 아니면 “계몽”의 대리인으로 간주해야할지 불분명하다고 한다. 

물론 이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다. 주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견해는 역사 문제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존경하는 사람은 리처드 닉슨을 존경하는 사람과 다른 이념적 견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레닌, 처칠, 크롬웰, 루이 14세, 비스마르크와 같은 인물도 이념적 견해에 따라 자신의 견해가 달라지거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에도 언론에서 나폴레옹의 족적이 화두가 될 때마다 좌파와 우파의 전문가와 평론가들은 그에 대해 호의적인 의견을 많이 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소위 계몽 정책들을 “근대화”라고 칭송한다. 장엄한 군대의 위용에 쉽게 빠져드는 보수주의자들은 나폴레옹이 장군으로서 강한 남성성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즉, 리버테리어니즘)로 알려진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보면 나폴레옹의 족적은 덜 모호해진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경찰국가를 구현한 군사 독재자였다. 그리고 그는 국가권력의 강화를 지지했었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주요 정책 수단으로 삼았고 수십만 명의 군인을 징집하여 정복 활동을 단행했다. 자유, 평화 그리고 국가권력에 대한 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유럽이 더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왜 좌·우파 전문가들은 나폴레옹을 옹호하는가?

나폴레옹의 족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모호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호전적인 성향과 독재자로서의 지위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좋은 면”을 이어받아 유럽을 “근대화”한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는 국가 권력을 중앙집권화했고 교황권에 반대했으며 유럽의 낡은 중세 정치를 무너뜨렸다. 여전히 현대의 모든 것이 ‘중세의 모든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현대의 학자들에게 나폴레옹의 족적은 찬사를 할 만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앤드류 로버츠의 주장 속에서 간단 명료하게 요약되어 있는 중도 우파의 관점을 찾아볼 수 있다. 마가릿 대처의 지지자이자 신보수주의자인 로버츠는 나폴레옹을 전쟁으로 기억해야할 것이 아니라 “프랑스 민법전, 즉 42개의 상이하고 모순적인 법을 이해하기 쉬운 프랑스 법의 체계로 굉장히 잘 정리한 것”으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썼다. 또한 로버츠는 나폴레옹이 위대했던 이유로 “나폴레옹은 주(州)와 도(道)를 바탕으로 행정시스템을 통합했다. 그는 지금도 프랑스의 법률을 심사하는 국무원과 공공 회계를 감독하는 감사원을 창설했으며 프랑스 중앙은행을 조직하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나폴레옹이 위대했던 이유는 중앙 정부의 역할과 권력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민법전은 지방의 법적 독립성과 관습을 폐지하고 중앙에서 통제하는 단일 법률기구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을 정복하면서 프랑스와 외국 정치계의 권력을 중앙집권화하는데 기여를 했다. 나폴레옹의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복은 국가 통합에 반대하는 산발적인 저항을 없애거나 약화시켰고 이후 수 십 년 동안 독일과 이탈리아가 국민 국가가 되기 위한 길을 닦는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또한 로버츠는 나폴레옹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훌륭한 후원자였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한다. 그러니 나폴레옹이 징집해 고기 분쇄기로 만든 수 많은 젊은이들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나폴레옹이 맹렬히 세금을 쏟아 부어 멋진 건축물을 지었다는 사실만 기억해야 한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의 큰손인 브라이언 골드버그도 비슷한 평가를 내리면서 전형적인 중도 좌파의 관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골드버그에게 나폴레옹은 “과학을 발전시키고, 예술가를 후원하고, 평등주의 민법전을 만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보다 계몽된 사회로 통합하는데 시간을 쓴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만일 그랬다면 나폴레옹은 평등주의와 문명화된 경찰국가의 초기 선구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자크 고데쇼는 나폴레옹 정권을 “아마도 현대 경찰 국가의 전신”이라고 불렀고 역사학자 유겐 베버는 나폴레옹 정권을 경찰 국가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고 했다. 물론 나폴레옹 정권이 20세기 경찰 국가에 비해 온건하고 신사적이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나폴레옹 정권을 칭찬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다. 마이클 시발리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경찰은 모든 대중의 의사표현을 엄격하게 통제했고, 비밀 요원망을 만들어서 국민을 감시했으며, 정권의 정적들을 기소나 재판도 없이 특별 국가 감옥(special state prisons)에 구금했다. 한마디로 나폴레옹 정권은 적절한 사법 절차를 자주 무시했고 프랑스 혁명이 선포한 시민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침해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자유주의의 적,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다른 중요한 측면에 있어서도 고전적 자유주의의 적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유로운 상거래와 자본주의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거의 없었다. 당연하지만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부의 상당 부분을 전쟁과 정부 재산으로 허비했다. 스티븐 핑커는 “전쟁의 화신인 나폴레옹은 영국을 ‘장사치의 나라’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당시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보다 83%나 더 많은 소득을 올렸고 3분의 1이나 더 많은 칼로리를 섭취했으며 우리 모두는 워털루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나폴레옹의 어록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 말 자체는 나폴레옹의 성격과 비슷하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자유주의에 간접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주었다. 나폴레옹이 계몽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자유주의’ 프랑스의 기치를 내걸고 정복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정복군은 자유주의 그 자체와 연결짓게 되었다. 이런 장기적인 영향은 많은 사람들이 이 이념에 반감을 갖게 만들었다. 역사학자 랄프 라이코(Ralph Raico)는 18세기 독일에서 고전적 자유주의가 부상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서는 상황이 반대로 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라이코는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의 정치 및 군사적 역사 즉, 근본적으로 혁명 프랑스가 전 유럽을 정복하고 통치하려고 했던 것에 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라이코는 17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럽의 오랜전통과 종교적 신념에 반감을 갖고 있는 인권, 국민주권, 프랑스 계몽주의는 군사력에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불패의 억누를 수 없는 프랑스 군대가 유럽의 많은 곳을 침략하고 정복하고 점령했다.”고 적었다. 그 결과 프랑스 정권의 이념으로 알려진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물론 실제로 프랑스 정권의 이념은 전혀 자유주의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외부 이데올로기를 가져온 침략군은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적개심과 저항, 호전적인 민족주의 반응을 촉발시켰다. 이는 러시아와 스페인에서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저항과 적개심이 독일에서 일어났다. 개인주의, 자연권, 계몽주의의 보편적인 이상은 독일 국민을 정복하고 모욕한 증오의 침략자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이 때부터 독일의 자유주의가 짊어져야 했던 짐이었다.”

1945년 이후로 미국인들이 반복적으로 주장했던 것처럼 나폴레옹은 외국이 계몽과 평등 사상을 수용하기 위해 침공을 환영하거나 적어도 침공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처럼 독일 국민도 평등과 자유주의 사상을 원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복을 통해) 구 체제를 없앤 것을 정당화했다. 당연하지만, 많은 외국 국민들은 나폴레옹의 관대함에 감사해 하지 않았다.

오늘날 미국의 세계 민주주의를 위한 현대 전쟁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폴레옹의 논리를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자기 결정권, 자유 시장, 평화, 자유를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에게 있어서 나폴레옹은 존경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나폴레옹은 폭군, 전쟁광, 중앙집권주의자였으며 정복과 권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를 전파한다고 주장하는 위선자였다.


태그 : #세계사 #인식론 #리뷰

썸네일 출처 : https://www.imdb.com/title/tt13287846/media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