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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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 윤리학의 궁극적 정당화에 관하여 (1편)

해외 칼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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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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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철학과_방법론
번역 : 한창헌 연구원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그의 걸작 '인간행동(Human Action)'을 통해 행동의 의미에 대한 개념적 이해(여기에 더해 행동이 일어나고 있는 경험적 현실에 대한 소수의 일반적이고 명시적인 가정들) 안에 함의되어 있고, 그 안에서부터 연역된 경제 이론의 전체를 제시하고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개념적인 지식에 "행동의 공리(axiom of action)"라는 이름을 붙이고, 경제 이론을 쌓아 올리는 행동의 의미, 즉 가치, 목적, 수단 그리고 선택, 선호, 이익, 손실, 비용이 선험적인 지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것은 감각적인 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반성(reflection)으로부터 추론된 것이다(어떤 사람들은 행동을 보지 않고 육체적인 현상을 행동으로 해석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떠한 시도로도 무효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이미 행동의 존재와 행동의 범주에 대한 행위자의 이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도 결국은 의도적인 행동이다!).

선험적으로 참인 명제로부터 연역하여 경제학을 재구성함으로써, 결론적으로 미제스는 경제학의 궁극적 기초를 제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는 이와 같이 설립된 경제학에 "인간행동학(praxeology)", 행동의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경제학의 명제가 부정할 수 없는 행동의 공리(action-axiom) 그리고 이와 동등하게 (동일율과 모순율 같이) 부정할 수 없고 (예를 들어 물리학처럼) 모든 경험적 테스트(empirical testing)로부터 독립적인 추론 법칙을 통해 명백히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간행동학의 개념과 인동행동학적 사상의 전체 건축물이 특정한 기반을 확립함으로써 그를 서구 합리주의 전통의 위대한 사상가 중 하나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제스는 전통적인 또 하나의 주장이 합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기초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미제스에 따르면 경제적 명제에서와는 다르게 윤리적 명제에는 궁극적인 정당화가 존재할 수 없다. 경제학은 하나의 수단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적절한지 아닌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목적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경제학도, 다른 어떤 과학도 판단할 수 없다. 한 목적 대신에 다른 목적을 선택할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과학의 관점에서 목적의 선택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변덕의 문제로서,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는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는 어떠한 정당화도 불가능하다.

많은 자유주의자들(Libertarians)이 미제스의 생각을 따라왔고, 그들도 윤리학의 합리적 기초에 대한 개념을 포기해왔다. 미제스가 했던 것처럼, 그들도 자유주의(Libertarianism)의 사유재산 윤리학이 다른 어떠한 것보다 더 높은 보편적인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오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낮은 생활수준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훨씬 선호하기 때문에, 따라서 자유주의가 더 널리 전파되어야 한다.'라는 경제학의 명제에서 가능한 한 가장 멀리 떨어진 주장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미제스도 알고 있던 것처럼, 이러한 고려는 보편적 부의 최대화라는 "공리주의적인(utilitarian)" 목표를 이미 받아들인 자유주의자들만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런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발휘할 수 없다. 따라서 최종적인 분석에서 있어서 자유주의는 신념에 따른 자의적 행동에 기초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 왜 이러한 입장이 성립될 수 없으며, 어떻게 자유주의의 로크주의(Lockean) 사유재산 윤리가 궁극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논증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겠다. 사실상 이러한 논증은 현대 자유주의 운동의 위대한 사상가 머레이 N. 리스바드(Murray N. Rothbard)가 자유의 윤리(Ethics of Liberty) 전체에 걸쳐 옹호한 자유주의의 자연법사상(natural rights position)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사유재산의 궁극적 정당화를 확립하는 이러한 논증은 자연법 전통에서부터 제공받은 전형적인 방식과 다르다. 자연법 전통보다는 미제스에게서부터 온 것으로, 그의 인간행동학의 개념과 인간행동학적 증명이 모델을 제시한다.

오직 자유주의 사유재산 윤리만이 논증적(argumentatively)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이와 같은 논쟁의 인간행동학적 전제조건(presupposition)이기 때문이고, 또한 이것으로부터 벗어난 비-자유주의 윤리적 제안(proposal)은 스스로의 입증된 선호(demonstrated preference)를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제안이 제시될 수는 있다. 그러나, 명제적 내용은 자신의 명제-작성(proposition-making) 행위로 인해, 즉 논쟁에 참여하는 행위로 인해 자신의 선호를 나타내는 윤리와 모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사람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하는 데 무관심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명제가 주관적인 선호를 나타내는 바로 그 명제-작성 행위(다른 말을 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대신 위와 같이 말하는 것)에 의해 모순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이처럼 비-자유주의 윤리학적 제안은 실제로 그것을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부정된다.


태그 : #인간행동학 #자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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