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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 윤리학의 궁극적 정당화에 관하여 (2편)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3-12-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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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Hans-Hermann Hoppe
한스-헤르만 호페는 살아있는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호페는 멩거, 뵘-바베르크, 미제스, 그리고 라스바드로 이어지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과 오스트로-자유주의(Austro-libertarianism)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로서, 칸트(Immanuel Kant)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인간행동학 이론체계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멩거(Carl Menger)에 의해 창시된 오스트리아학파가 미제스의 인간행동학을 통해 완전한 선험적-연역적 이론체계로 탈바꿈했다면,—적어도 지금까지는—최종적으로 호페가 미제스의 방법론을 경제학을 넘어 형이상학과 윤리학에도 적용함으로써, 인식론,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을 아우르는, 일종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으로서의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체성이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 #철학과_방법론
번역 : 한창헌 연구원
사유재산 윤리학의 궁극적 정당화에 관하여 (1편)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중요성과 논리적 힘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두 가지 통찰이 필수적이다.

첫째, 무엇이 정당한지 아니면 부당한지에 대한 질문—혹은 무엇이 타당한 명제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같이 훨씬 더 일반적인 질문—은 오직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명제적 교환(propositional exchange)을 할 수 있는 한에서, 즉 논쟁을 할 수 있는 한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논쟁은 돌멩이나 물고기와 마주해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명제적 교환에 참여할 능력이 없고 타당성을 주장하는 명제를 생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능력만 있다면 —그리고 현재 아무런 주장도 할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을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 모순되지 않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어떠한 윤리적 제안도, 다른 명제들과 마찬가지로, 명제적 혹은 논증적 수단을 통해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가정되어야 한다. (미제스 또한 그가 경제적 명제들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주장을 가정해야 한다.) 사실 어떤 명제를 생산하는 경우, 공공연하게든 혼자만의 생각으로서든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설득하는 데 있어서 논증적 수단에 의존하려는 의지에 대한 선호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 명제적 교환과 논쟁에 의한 정당화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정당화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논증적 수단으로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제안자의 주장과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윤리적인 제안에 대한 궁극적인 패배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한 양립 불가능을 입증하는 것은 그 제안이 불가능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는 지적 탐구의 영역에서 가능한 가장 치명적인 파괴가 될 것이다.

둘째, 논쟁은 맥락 없이 허공에 떠다니는 명제(free-floating propositions)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희소한 수단(scarce means)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행동의 한 형태이며, 개인이 명제적 교환에 참여함으로써 선호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 곧 사유재산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례로, 만약 우리가 자신의 물리적 신체를 배타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어떤 제안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논증적 수단에 의해 제시된 어떤 명제에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논쟁은 서로의 신체에 대한 상호 배타적 통제를 인정(recognition)하는 행위로서, 이미 말해진 명제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의견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는 명제적 교환의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이 선험적으로 정당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명백하다. 어떤 규범(norm)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러이러하다고 제안한다."라고 말하기 위해, 자기 신체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이 타당하다는 규범을 사전에 전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기소유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수행모순(practical contradiction)에 직면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부정하고자 했던 바로 그 규범을 암시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신체와 더불어 홈스테딩(homesteading)(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기 전에 먼저 사용하는 것)을 통해 희소한 수단을 전용(appropriate)하는 것이 허가되지 않고, 희소한 수단과 그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권에 관하여 객관적인 물리적 경계가 정의되지 않는다면, 일정한 시간 동안 논쟁을 지속하고 자기주장의 명제적인 힘에 의존하는 것은 모두 불가능할 것이다. 만일 자신의 신체를 제외한 어떠한 것도 획득하고 통제할 권리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존재를 멈추게 될 것이고 규범을 정당화 시키는 문제 또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다른 것들에 대한 재산권이 타당하다고 전제해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달리 주장할 수 없다.

더구나, 홈스테딩을 통해, 즉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기 전에 특정 사람과 특정 재화 사이의 객관적인 연결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재화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권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또 그 대신에 뒤이어 온 사람(late-comer)에게 재화의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전에 뒤이어 올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어떤 것으로 어떤 일을 하도록 허가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조상도, 우리의 후손도 이러한 규칙 아래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에서든 현재에서든 미래에서든,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며,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재산권이 시간관계와 무관하다거나 관련된 사람들의 숫자에 구애받지 않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재산권은 명확한 시점에서 특정 개인의 행동의 결과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확한 시점에 누군가 먼저 말을 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이 대답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첫 번째 사용자가 첫 번째 소유자가 되는 자유주의 규칙(first-user-first-owner rule of libertarianism)을 무시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순을 내포한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라도 명확한 시점에 독립적인 의사결정체로서의 개인의 존재를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홈스테딩을 통해 획득한 사물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경계가 정의되지 않고(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침해가 다른 사람의 재산에 대한 물리적 상태를 침범하는 것으로 정의되지 않고) 주관적인 가치와 평가에 의해 정의된다면, 행동과 명제-작성 행위 또한 불가능한 일이 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것의 물리적 상태를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의 재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판단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평가에 달려 있다. 누구든 자신이 계획한 행동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바뀌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전 세계 인구와 토의하고 합의를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합의가 성취되기도 전에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또한, 재산가치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논증적으로 방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실제 합의 이전에 행동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명제를 주장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허용된다면, 이는 재산의 객관적인 경계, 즉,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치와 평가 체계에 관하여 다른 사람과 먼저 합의할 필요 없이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살아있음으로써 그리고 명제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자유주의 사유재산 윤리를 제외한 어떠한 윤리도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며, 뒤이어 온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사물의 소유가 주관적인 기준으로 정의된다면, 어느 누구도 주어진 시점에 물리적으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체로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타당성을 주장하는 명제를 제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으로 사유재산 윤리의 선험적 정당화를 끝맺는다.


태그 : #인간행동학 #자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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