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칼럼 및 번역자료 투고 요령 안내

이성을 추구해야하는 이유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4-01-18 00:00
조회
378

Ludwig von Mises | American economist | Britannica

Ludwig von Mises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20세기에 가장 명성이 높았던 경제학자이자 사회철학자 중 한 명이다. 길고 생산적인 삶을 살면서, 그는 개별 행위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하여 목적 지향적으로 행동한다는 근본적인 공리(axiom)에 바탕을 둔 통합된 연역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의 경제분석 자체는 —경제학자가 가진 가치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value-free)’이지만, 미제스는 인류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지속 가능한 유일한 경제정책이 무제한적인 자유방임(laissez-faire), 자유시장, 결코 방해받지 않는 사유재산권(the right of private property)의 행사,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그 영토 내의 시민과 재산의 보호로 엄격하게 제한함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주제 : #인간행동학
편집: 전계운 대표

  • 본 글은 미제스의 역작 <인간행동>(Human Action)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분별있는 합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인간을 전지전능하게 만드는 척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식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주어져 있고, 더 이상 해명하기가 쉽지 않은 사실들은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인지에 도달할 수 있는 한 이성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주어진 사실은 바로 비이성적인(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한, 알 수 있는 것들은 이성적인 것이다. 비이성적인 인식 양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비이성적 성격을 띤 과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관한 한, 논리 및 명백한 경험 자료들과 모순이 되지 않는 여러 가설들이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가설일 뿐이다.

우리는 무엇이 인간 능력에서 선천적 차이를 야기하는지 모른다. 과학은 뉴턴과 모차르트가 왜 창조적 재능이 풍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른다. 천재의 위대성이 그의 조상이나 인종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다. 문제는 엄밀하게 말해서 왜 천재적인 사람들이 형제와도 다르고 그가 속한 인종의 다른 구성원과도 다른가 하는 점이다.

백인종의 우대한 성취들을 인종적 우수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문명의 초기 기반이 다른 인종들에 의해서 다져졌다는 사실과는 모순이 되는 애매모호한 가설에 불과하다. 우리는 후일 다른 인종들이 서구 문명을 대체할지를 알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가설은 그 나름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인종주의자들이 여러 인종 집단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알력이 존재하고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노예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그 가설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서, 무턱대도 비난해서도 안 된다. 리카도의 제휴의 법칙이 이미 오래전에 인간의 불평등에 대한 이런 그릇된 해석을 일축했다. 명백한 사실들을 부정하면서 인종주의 가설과 싸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어떤 인종들이 지금까지의 문명의 발전에 전혀 또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열등하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르크스의 가르침으로부터 일말의 진리를 뽑아내고자 열망한다면, 그는 감정들이 인간의 추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감히 이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감정들이 인간의 추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해서 마르크스주의가 신뢰받는 것은 아니다. 이 발견은 인식론에 아무런 중요성도 가지지 못한다. 정확한 추론에 성공하든 오류를 범하든, 거기에는 많은 원천들이 작용한다. 그 원천들을 열거하고 분류하는 것은 심리학이 할 일이다.

질투는 널리 퍼져 있는 인간의 취약점이다. 많은 지식인들이 번창한 사업가의 고소득을 부러워하며, 이런 질투심이 그들을 사회주의로 몰고 간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그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받는 것보다 더 높은 봉급을 지급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질투심이 존재하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해서, 사회주의학설에 대해서 가장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할 과학의 임무가 경감되지는 않는다. 학자들은, 마치 그 학설의 지지자들이 오로지 지식에 대한 갈망에 의해서만 고무되고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모든 학설을 다루어야 한다. 여러 유형의 다중논리주의는 반대 학설에 대한 순수한 이론적 검토 대신 이를 반대 학설을 편 학자들의 배경과 동기의 폭로로 대체하지만, 그런 방식은 추론의 가장 중요한 원칙들과 양립할 수 없다.

그 역사적 배경, 그 시대의 '정신', 그 출신 국가의 물질적 조건 및 그 저자의 개인적 자질을 언급함으로써 한 이론을 일축해 버리는 것은 얄팍한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이론은 단지 이성의 재판만 따른다. 적용되어야 할 척도는 언제나 이성이라는 척도다. 어떠한 이론이 정확할 수도, 부정확할 수도 있다. 현재의 지식수준으로는 그 이론의 정확성이나 부정확성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한 이론이 프롤레타리아나 중국인에게 타당하지 않으면 부르주아나 미국인에게도 결코 타당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와 인종주의자들이 옳다면, 권력자들이 왜 반대 이론을 억압하고 그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할 수 수 없다. 이단자들을 불법으로 몰고 또한 근절하는 데 열중하는 참을 성 없는 정부들과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이성이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다. 물론 어떤 학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 학설과 싸우기 위해 경찰, 교수형 집행인 및 난폭한 군중을 이용한다는 사실이 그 학설의 타당성에 대한 최종적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폭력적 억압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서 그들 자신의 학설이 지지받지 못함을 확실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다.

논리와 인간행동학의 선험적 근거들의 타당성과 관련해, 이 근거들 자체를 논의하지 않고는 그 타당성을 보여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성은 궁극적 기정사실이어서 그 자체는 분석될 수도, 의문이 제기될 수도 없다. 인간 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비이성적 사실인 것이다. 이성에 관해 단언할 수 있는 유일한 진술은, 이성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고 인간에게만 특정한 모든 것을 발생시켜 온 표지라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의 사용을 포기하고 단지 직관과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 사회의 성취를 분석해 주는 것 외에는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없다. 경제학은 사회적 협동의 발생과 작동을 묘사하면서, 이성과 비이성 간에 궁극적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인간이 이성의 최고 권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가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인지 알아야만 한다.


태그 : #인식

썸네일 출처 : ARTGU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