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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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完] 하이에크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실패 - 자유주의 전략에 필요한 것

해외 칼럼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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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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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Hermann Hoppe

주제 : #자유주의전략

원문 : The Property And Freedom Society — Reflections After Five Years
번역 : 김경훈 연구원

[1편] '제한된 정부'와 '최소국가'라는 환상
[2편] 정부와 야합하는 '어용 자유주의'
[3편] 자유주의 전략은 반국가주의에 있다
[4편] 보수주의는 경제학이 없다
[5편] 보수주의는 일관성이 없다


상기한 경험으로 하여금 나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이미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에서 어느정도 파악했던 교훈이 보다 확고해졌다. 정치인을 신뢰해선 안되고, 정치에 정신이 팔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수 많은 개인적인 자질에도 불구하고, 결국 뷰캐넌은 사회변화의 수단으로서 무엇보다도 정부를 신뢰하는 정치인이었다. 둘째, 경제학의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는 대체로 지속적인 지적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배웠다. 행동의 논리학인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사회적 현실의 전체를 이해하는데 결코 충분하진 않지만, 필수적이며 필요 불가결하다. 최소한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이 '경제학의 교훈(Economics in One Lesson)'에서 설명한 만큼의 지식도 없다면, 사람들은 역사적 현상에 대한 설명 및 해석에 있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재산과 자유 협회가 정치인, 정부관료, 선전꾼에게 감탄과 경외를 보내기 보다는, 그들을 조롱과 경멸, 벌거벗은 임금님, 혹은 농담의 대상 정도로만 치부하는 동시에, 경제학에 무지한 모든 사람 역시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존 랜돌프 클럽의 해체는, 그 협회가 추구한 사상들이 사라졌거나 더 이상 설득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같은 사상과 이상을 추구하는 싱크탱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연구소(Ludwig von Mises Institute)가 크게 성장했다. 미제스 연구소는 1982년에 머레이 라스바드를 학장으로 삼아 설립되었는데, 라스바드를 비롯한 모든 미제스 연구소 구성원이 아나코-캐피탈리스트이자 오스트리아학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한된 정부를 지지하는 싱크탱크로 출발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그러했다. 나는 미제스 연구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류 락웰(Lew Rockwell)은 워싱턴 D.C. 와 멀리 떨어져 있는 앨라배마 주 '어번(Auburn)'으로 거점을 옮기며 제한된 정부라는 목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공연히 인정하였고, 대신 아나코-캐피탈리즘의 비타협적인 옹호자를 표방하는 최초이자 유일의 자유시장 싱크탱크로 변모시켰다. 아나코-캐피탈리즘은 그 이름에 대한 편협하고 '문자 그대로의' 해석과 달리, 인간행동학적-논리적 방법론을 엄밀하게 추구함에 있어 미제스 정신에 매우 충실한 것이며, 인간행동학의 궁극적인 결론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회는 처음에 재정적으로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지만, 락웰의 뛰어난 지적인 기업가정신 덕분에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그 도달범위 및 영향력에 있어 훨씬 더 부유한 '제한된 정부' 경쟁자, 예컨대 카토 연구소 등을 손 쉽게 능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경제적 사안에 보다 세밀하게 초점을 맞춘 미제스 연구소 외에도, 존 랜돌프 클럽에서의 실망스러운 경험과 그 해체를 계기로 하여, 류 락웰은 1999년에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학제간, 문화적 차원을 더한 반-국가, 반-전쟁, 친-시장 웹사이트인 LewRockwell.com 을 설립했다. 이 웹사이트는 미제스 연구소 보다도 훨씬 더 인기 있으며, 지금의 론 폴 운동을 위한 지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재산과 자유 협회는 미제스 연구소 혹은 류락웰닷컴과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싱크탱크 혹은 또 다른 논설문 출판사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재산과 자유 협회는 반국가주의 지적 반문화의 발전에 새로운 중요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미제스 연구소와 류락웰닷컴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의 노력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존 랜돌프 클럽의 해체와 함께 사라진 것은, 자유주의 명분을 위해 헌신하는 지식인 사회였다. 그리고 모든 지적 운동은 성공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지인, 친구, 전우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그러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만남을 주선하는 장소, 협회가 필요하다. 재산과 자유 협회는 이를 목표로 하였다.

나는 세계 각지에서 온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비타협적이며 검열되지 않은 지적 급진주의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한 협회는 국제적이며, 학제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초대받은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배타적인 엘리트주의 그룹이 되어야 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범죄자들, 사기꾼들, 돌팔이들, 그리고 미치광이들이 구축한 연막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2005년에, 여기 터키 보드룸의 프린세스 카리아 호텔에서 첫 만남을 가진 이후, 나의 계획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 아름다운 정원의 매력에 감명받아 나는 재산과 자유 협회를 위한 살롱과 만남장소로서 프린세스 카리아 호텔을 선택하였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살롱(salon)'은 "주최자의 고무적인 영향하에, 친교활동을 즐기고 대화를 통해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지식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지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엘리트들의 모임" 이다. 여기서 '정치적' 이라는 수식어만 제외하도록 하자. 나의 아내이자 미제스주의 학자인 굴친 임레(Gülçin İmre)와 함께 지난 몇 년 동안 이루고자 노력한 것들이 이 재산과 자유 협회에 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 웅장하고 광대한 연례 살롱의 주최자가 되어 그것을 매력적이고 걸출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다섯 번째 만남이 우리의 목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태그 : #자유주의일반 #아나코캐피탈리즘 #호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