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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와이어 1월호] 조선의 개항과 자유, 그리고 문명교체

국내 칼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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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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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전용덕
1952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였고, 퇴직하여 동 대학 명예교수이다. 한국 미제스 연구소의 학술분야를 총괄하는 아카데미 학장으로서, 자유주의 철학과 자유시장경제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왔다.

주제 : #한국사
  • 편집자주: 본 글은 2022년 4월에 출간된 <자유의 순간들>에서 전용덕 학장의 에세이를 발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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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년) 2월 조선왕조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조선은 일본을 견제하려는 청나라의 주선으로 1882년 5월 미국과도 통상 조약(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조선은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 잇달아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일련의 통상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정부는 500년 동안 닫아왔던 나라 문을 세계를 향해 활짝 열었다.

개항은 조선과 그 이후 사회에 많은 경제·사회적 변혁을 초래했다. 개항이 조선에 초래한 변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인(私人)간’의 교역의 ‘자유로운’ 허용이다. 개항 이전까지 조선에서의 국제무역은 ‘공(公)무역’이 중심이었고 그런 무역마저 엄격히 ‘제한’되었다.

수출입을 합산한 무역 규모는 1877년에 190천 원에서 1944년 1,905,473천 원으로 증가했다. 물론 두 연도의 무역액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개항으로 무역 규모가 70여 년 만에 천문학적으로 증가한 것은 분명하다. 3공화국 이후에도 무역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왔다는 점은 우리 모두 익히 아는 사실이다.

개항으로 촉발된 자유무역은 ‘자유의 확대’를 가져왔다. 개항으로 누구나 그리고 정부의 허가 없이도 국제무역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항이 조선과 그 이후 사회에 초래한 경제·사회적 변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경제행위에서 자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의 확대는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각종 경제행위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개인택시 운행을 위하여 면허를 받아야 한다면 여러분이 면허를 취득하기 전까지는 개인택시를 운행할 수 없다.

개항으로 인한 자유의 확대는 ‘경제적 자유’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의 확대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으로 즉각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제강점기 사업 기회는 대부분 일본인에게 돌아갔고 식민지 한인에게는 물건을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일 등과 같은 비숙련 노동만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삶은 3공화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정치적 자유도 경제적 자유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항이 정치적 자유의 확대를 가져왔는가? 정치적 다수가 정치적 소수를 억압하고 탄압한다면 정치적 자유는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개항 이후 5공화국까지가 그런 기간이다. 문민정부들에서도 정치적 자유 중의 하나인 언론의 자유는 억압되었던 적이 많았다. 문민정부들마저도 가짜 뉴스로 선전·선동을 일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개항 15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자유의 확대야말로 ‘여전히’ 우리 사회의 최대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 문제는 자유의 확대에서 해법을 찾을 때만 해결 가능하다.

개항과 문명교체

개항이 한반도에서 중국문명을 서양문명으로 교체하는 출발점이다. 개항으로 한반도 조선 사람은 2차 문명교체에 진입했다.

역사가 김용섭은 『동아시아 역사 속의 한국문명의 전환』(2008년, 2015년 증보판)이라는 야심찬 역사서 한 권을 출간했다. 그는 그 책에서 ‘문명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한민족의 역사를 해석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한 나라의 역사를 ‘일국사’(一國史)가 아니라 ‘글로벌 역사’-문명의 수용, 변용, 전환-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용섭은 한국문명의 전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한민족의 시원문명은 알타이어계 북방민족의 문명이고 이 시기가 한민족 문명 형성의 요람기이다. 둘째, 1차 문명전환은 중국문명을 수용하는 것이고 그런 전환은 3국(고구려·백제·신라)시기를 전후하여 시작되었고 조선왕조 중기에서 끝이 났다. 셋째, 2차 문명전환은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것이고 조선왕조 후기에 시작되어 현재 진행형이다. 넷째, 현대의 서구문명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 문명권을 형성하고 그 결과로 세계인은 모두 문명공동체이다.

그러나 필자는 ‘문명전환’ 대신에 ‘문명교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전환보다는 교체가 더 적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교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일시에 뿌리째 교체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정악과 판소리 등은 자체가 없어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퓨전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서양문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근대문명을 지칭한다고 본다면 시간적으로는 18세기 중후반 이후의 문명이 대상이다. 개항은 그런 서양 근대문명으로의 교체 압력이 처음으로 극적으로 나타났던 사건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천주교 등은 청나라를 통해 수입되었지만 문명교체의 동력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압살되었다. 개항 이후에도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갑오개혁 등으로 문명교체의 압력은 작지 않았지만 대원군과 갑오동학군은 척왜척양(斥倭斥洋)을 외치면서 문명교체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 이후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멸망, 일제강점, 미군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그 이후 문민정부들 등에서 문명교체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출발점은 개항이라는 것이다. 개항을 문명교체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2차 문명교체는 대략 150여 년이 경과하고 있다. 1차 문명교체 기간에 비하면 150여 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서양의 근대문명은 ‘근대정신’이 요체이다. 근대정신을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토대로 다양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근대정신은 18세기 중엽 무렵 서양에서 확산하기 시작한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라는 정치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정신은 경험주의에 입각한 과학발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즉 서양문명의 근대정신은 과학을 토대로 하는 공업화 또는 산업화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2차 문명교체를 평가할 기준은 서양의 근대정신이다. 세부적으로는 이성에 대한 신뢰, 다양성과 자유의 존중, 고전적 자유주의의 확산 등일 것이다. 그리고 과학을 토대로 하는 공업화는 근대정신의 결과, 즉 하부구조일 뿐이다.

그러면 개항 이후 2차 문명교체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그러나 개항 이후 현재까지의 문명교체를 전부 다루는 것은 이 짧은 글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만 2차 문명교체를 아주 간략히 평가해 본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연성(軟性) ‘전체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전체주의에서 이성, 다양성, 자유 등은 억압 또는 말살되고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화(開花)할 터전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들과 민간들의 노력으로 공업화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보면, 작금의 한국 사회는 서양 근대문명의 요체인 근대정신은 던져버리고 그 하부구조인 공업화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2차 문명교체는 실패로 끝이 날 공산이 크다(18세기 중엽 이후 서양문명의 중심 국가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도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말이다. 다만 아직도 그런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양 근대정신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인 자유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핵심 가치로서 그 위치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고 자유를 기초로 하는 정치철학인 현대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즉 개항이 2차 문명교체의 출발점이라면 작금의 교체 과정은 혼미하고 퇴행적이다.

우리가 서양문명의 핵심인 근대정신을 ‘국가적으로’ 또는 ‘제도권 교육으로’ 학습할 기회는 없었다. 누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지도 전해주지도 않았다. 서양문명의 시원인 서구제국에서도 지금은 그들이 국가주의에 매몰되어 자유와 리버테리어니즘은 핵심 가치의 자리에서 밀려 난지 오래이다. 이 말은 지금의 서양문명이 미래의 세계문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교체의 완성을 위해서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스스로 서양 근대정신을 학습하는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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