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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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우파는 관세를 반대했다

해외 칼럼
역사
작성일
2024-12-13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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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 Rockwell - Wikiwand

Llewellyn H. Rockwell Jr.
가장 영향력있는 자유주의자 중 한 명인 류 락웰은 미제스 연구소의 창립자 겸 회장이며, 류락웰닷컴의 운영자이다. 일찍이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졌던 락웰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유주의 출판사인 '알링턴 하우스(Arlington House)'에서 근무했는데, 그곳에서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저술을 편집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접하게 되었다. 1975년에는 머레이 라스바드를 만나 완전한 아나코-캐피탈리스트가 되었으며, 1978년부터는 자유의 수호자 론 폴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1982년에는 마침내 미제스 연구소를 창립하면서 오스트로-리버테리어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활동가로 자리잡았다.

주제 : #간섭주의

원문 : The Old Right Opposed Tariffs (게재일: 2024년 10월 5일)
번역 : 전계운 대표

구(舊)우파(Old-Right)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집단으로, 이들 중 다수는 리버테리언이었다. 이들은 뉴딜정책의 “산업통제(industrial regimentation)”에 맞서 싸웠었고 미국에서 국가주의(statism)와 기업조합주의(corporatism)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적했다.

오늘날 일부 주장과 달리, 구 우파는 대기업, 조합주의를 포함한 자본주의를 열렬히 옹호했고 이윤 추구의 동기를 찬양했으며 국제 무역에 대해 철저히 자유방임주의적인 입장을 취했었다. 이들은 관세를 혐오했으며 보호무역주의를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한 형태로 여겼다. 

초도로프(Frank Chodorov)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우파에서 중요한 지식인이었는데 초창기 프리맨(Freeman)잡지에서 편집장으로 있었고 휴먼 이벤트와 인터컬리지 스터디 연구소(Human Events and the 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를 설립했다. 다작의 작가였던 초도로프는 두 세대에 걸쳐 학생들과 활동가들을 자유의 문학으로 인도했고 중앙 정부와 타협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는 “고립주의자”라는 꼬리표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고 미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을 실수라고 주장했다. 세계대전의 참전은 미국을 군국주의와 큰 정부로 강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초도로프에게 고립주의는 “정치 정책이 아니라” 합당하고 “당연한 입장”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가족과 이웃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외국인과 그들의 문제들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초도로프는 고립주의는 국제 경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다른 국가와의 자유무역은 우리 가족의 복지를 걱정하는데서 나온 정상적인 경제 활동의 일부라는 것이다. 초도로프는 일부 사람들이 “미국 우선주의”를 “미국산 구매”의 의미, 즉 “정치적 고립주의가 아닌 경제적 고립주의”로 만들려고 했을 때 경악하고 분노했다. 

그는 관세, 쿼터제, 금수 조치, 국제 무역에 대한 정부의 일반적인 간섭 등 경제적 고립주의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촉진제”라고 지적했다. “한 국가에게 무역 장벽을 세우는 것은 보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이는 “오해와 불신”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초도로프에게 “자유 무역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보호무역주의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위대한 저널리스트이자 미국 우선주의 위원회(America First Committee)의 리더였던 존 T. 플린(John T. Flynn) 역시 초도로프의 견해에 동의했다. 그는 1944년에 이렇게  썼다. “지난 70년간의 미국의 역사는 자유 기업이라는 이상과 이를 억제하고 규제하려는 결정 사이의 투쟁이었다.” 기업은 “생산과 유통의 거대한 그물망 전체를 구성”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일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거대한 유기체의 자연스러운 작동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플린은 국내 산업 계획1을 비난했는데 국내산업계획이 무역장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계획 경제의 첫 조건은 폐쇄 경제여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사람과 모든 종류의 상품을 차단하고 완전한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하며, 국가 “주위에 뚫을 수 없는 장벽”을 세우고 싶어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에서든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다.  

플린은 민족주의자였지만 자국을 먼저 우선시 여기는 것과 사회주의와 파시스트의 혈통인 무역 제한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는 좌파 진영에서조차도 보호와 계획 사이에 대한 연관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뉴딜정책을 주창하며 “국가 계획”이라는 용어를 만든 체이스(Stuart Chase)조차도 “국가 계획”은 경제 민족주의와 반드시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플린의 견해는 우파 무정부주의 경향이 강화된 것이었고 이는 집단주의, 평등주의, 근대화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여러 세대에 영감을 준 사회 비평가 알버트 제이녹의 견해와도 일치했다. 녹은 하퍼스(Harper’s)의 작가로 활동하며 반(反)국가주의를 전쟁 전 미국 보수주의의 정치적 핵심 화두로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 

플린 역시 해외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고립주의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호주의자였을까? 그는 1935년에 이렇게 썼다. “관세의 주요 목적은 순전히 강도질과 다를 바가 없는 방식으로 국내 소비자를 착취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임을 이제 우리 모두가 꽤 잘 알고 있다.” 

“가령 양모 수입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국가는 국내 양모 생산업자들이 자유 경쟁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을 초과하는 가격만큼 양모 소비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러한 이익 단체들은 소비자에게 그 세금에 대한 댓가로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국가는 수혜자로서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할 특권을 부여하고 이에 따라 이들은 소비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

몰리(Felix Morley)는 전통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에서 편집장을 사임하였고 후에 휴먼 이벤트(Human Events)의 편집장이 되었으며 연방주의와 외교 정책에 관한 훌륭한 책을 집필하면서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자(America Firster)이자 고립주의자였고 우파 포퓰리스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유 기업에 관해서는 타협이 없었다. 그는 자유기업이 국경에서 멈춰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한 없는 경쟁은 경제적 자유에 필수적인 것이다.”라고 썼다. 이어 그는 “실제로 경쟁은 자유의 개별적인 속성과는 구별되는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발전하는 문명에서 시장에 대한 목표는 항상 무역의 제한을 제거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몰리는 기업가들이 시장을 가장 잘 보호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자유 기업이라는 미명하에 경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번” “경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독점적인 운영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높은 관세와 기타 정부의 특혜를 얻기 위해 공개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움직였다.”라고 썼다.

구 우파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 이론가는 해즐릿(Henry Hazlitt)이었다. 루스벨트(FDR)의 국가산업부흥법(National Recovery Act)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더 네이션(The Nation)에서 쫓겨난 그는 H.L멘켄의 도움으로 아메리칸 머큐리(The American Mercury)의 편집장이 되었다. 케인스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에 해즐릿은 뉴스위크(Newsweek)에 사설을 기고하면서 자유시장 우파를 열광시켰다. 또한 그는 보호무역주의와 경제 민족주의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정부 간섭을 혐오하는 데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출간되고 있는 해즐릿의 <경제학 1교시>(Economics In One Lesson)는 보호무역주의와 보조금 수출의 실패를 두 장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다. 해즐릿은 “관세는 보호받는 산업에서 임금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모든 직업군을 고려해보았을 때 실질임금은 오히려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자유 국제무역에 대해 우려하는 구 우파도 있었다. 수필가 개럿(Garet Garrett)은 생애 말년에 수입과 수출을 모두 차단하는 폐쇄적인 국경을 선호하게 되었는데 그는 외국 소비자들에게 미국 제품을 강제로 구매하게 만드는 것은 전쟁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개럿만큼 대기업을 강력히 옹호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전기 작가는 그를 “이익의 예언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현재 보수주의 운동의 제한주의 무역 이론은 구 우파의 이론이 아니다. 이들의 지적 유산은 영국의 중상주의에 더 가깝다.

구 우파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있는 영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해로운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우리는 영국의 범죄 목록에 우리의 경제정책에 영향을 준 것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태그 : #미국사 #간섭주의 #보호주의와_자유무역

썸네일 출처 : https://www.frost.com/news/us-china-tariff-war-what-are-the-implications-for-the-healthcare-industry/

  1. 역주: 경제개발 5개년, 00산업 육성법이 이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