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언제나 정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Liberty is always freedom from the government.)

-루트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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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 vs 아인 랜드: 나치즘의 기원에 대한 논쟁

해외 칼럼
철학
작성자
작성일
2020-06-19 23:59
조회
1436

David Gordon
* 미제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 <미제스 리뷰(The Mises Review)> 편집자

주제 : #철학과_방법론

원문 : Mises versus Rand on the Origins of Nazism (게재일 : 2020년 4월 17일)
번역 : 김경훈 연구원

phil

금요일의 철학(Friday Philosophy) <펼치기>


'나치즘(Nazism)'의 기원에 대한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아인 랜드(Ayn Rand)의 견해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었다. 이 글의 목적은 양자의 차이점에 대해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아인 랜드의 유산을 상속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객관주의자(Objectivist, 아인 랜드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 레너드 페이코프(Leonard Peikoff)의 1982년 저작 <불길한 유사점(The Ominous Parallels)> 은 당대의 미국 문화와 나치를 탄생시킨 독일 문화를 비교하는데, 나치즘의 탄생에 대한 아인 랜드의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비록 랜드가 직접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면서도, 그녀가 전적으로 이 책을 지지했으며, 이 책이 페이코프의 다른 책들과 상당히 다른 문체로 쓰여졌음을 고려한다면, 그녀가 이 책의 내용에 개입했다고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에 대해 하나의 일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은 작고한 위대한 자유주의자 랄프 라이코(Ralph Raico)가 편집하던 잡지 <인콰이어리(Inquiry)>에 이 책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서평을 기고했었다. 이 서평은 지금까지 내가 쓴 여러 서평 중에서도 두번째로 많은 논쟁을 일으켰었다. [역주: 가장 많이 논란이 되었던 서평에 대한 정보는 본문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글에서 페이코프를 다시 공격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목적은 선술한 바 처럼, 나치즘에 대한 랜드의 주장과 미제스의 주장을 비교하는 것 뿐이다.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그 서평에서 내가 페이코프의 입장을 요약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페이코프는 히틀러의 탄생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근본적인 학문, 즉 철학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유명한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는 '먹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Man is what he eats)'고 말한 적이 있다. 반면에, 페이코프는 인간을 알기 위해선 그가 믿는 형이상학, 지식 이론, 그리고 윤리학을 파악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당대의 독일인들이 히틀러가 퍼트린 엉터리 주장 속의 명백한 결함을 간파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이 근본적 주제, 즉 철학에 있어 왜곡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인들이 가진 잘못된 사상의 주요 원천은, 바로 독일의 최고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사악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물론 페이코프가 나치즘의 모든 책임을 칸트에게 전가하는 것은 아니다. 플라톤이나 헤겔 같은 다른 철학자들도 나치즘에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당신이 내 말을 믿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지만, 페이코프는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온화한 현자였던 칸트를 '나치의 원조(proto-Nazi)' 라고 정말로 간주한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심지어 페이코프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의 삶 마저도 이렇게 묘사한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는 서양 역사의 모든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바라는 이론과 꿈의 구현이었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반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칸트이다.

칸트의 어떤 점이 그렇게 나쁜 것일까? 페이코프에 따르면, 칸트는 우리가 감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물리적 세계를 단순한 '현상의(phenomenal)' 영역으로 격하시켰다. 이는 말 그대로 단순히 '현상(appearance)'에 불과한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본체의(noumenal)' 세계는 논리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또 윤리학에서, 칸트는 개인의 행복을 도덕적 차원에서 다룰 가치가 없다고 치부하였다. 대신에, 그는 사람들이 인간이라면 자기의 이익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의무에 전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칸트의 학설이 히틀러 탄생의 길을 닦아주었다는 것이 페이코프의 주장이다: "1. 나치는 이성을 거부했는데, 칸트 역시 이성이 세계의 현상을 넘어선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 나치는 모든 개인이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칸트의 윤리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안이다." 칸트의 영향력이 바이마르 공화국 전체에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당대 독일의 어떤 중요한 집단도 '비합리주의(irrationalism)', '이타주의(altruism)', '집단주의(collectivism)'라는 사악한 교리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페이코프는 설명한다. 좌파 진영의 퇴폐적인 표현주의 예술가들도 우파와 마찬가지로 칸트의 비합리주의 가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사실상 바이마르 공화국의 어느 누구도 히틀러에 대한 효과적 저항을 개시할 수 없었다. 1933년에 히틀러가 승리했다는 사실이 이 주장들의 근거가 된다.

1944년에 출판된 미제스의 <전능한 정부(Omnipotent Government)>는 놀랍게도 일부 구절에서 페이코프 주장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그는 본인이 서거한 후 한참 뒤에 나온 페이코프의 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치즘이 독일 관념론 철학의 논리적 결과라는 주장이 거듭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물론 오류이다. 독일의 철학 사상은 나치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의 성격과 정도가 엄청나게 잘못 이해되고 있다.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을 비롯한 개념들로 대표되는 칸트의 도덕적 가르침은 '프로이센주의(prussianism)' 혹은 나치즘과 전혀 관계가 없다. … 칸트는 국가간의 영구적 평화를 옹호했다. 그러나 나치는 전쟁을 "우월한 인간 존재의 영구적 형상(as the eternal shape of higher human existence)"으로서 찬양하며, 그들인 "항상 전쟁 속에 사는 것(to live always in a state of war)"이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p. 140)

미제스에 따르면, 독일 철학이 나치에게 책임이 있다는 관점은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에 의해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비록 산타야나가 거의 연구되지 않지만, 그는 20세기 전반의 상당히 중요한 철학자였고 미제스 역시 그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독일 민족주의가 독일 철학의 결과라는 견해는 주로 조지 산타야나의 권위 때문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 … 산타야나는 독일 민족주의의 핵심 원천이 '자기중심주의(egotism)'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 자기중심주의를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이기주의(natural egoism)' 혹은 '자기권리의 주장(self-assertion)'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자기중심주의는 "자신의 존재와 힘의 근원은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의지와 논리는 전능하며, 정신과 양심 그 자체만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단언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정하는" 사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산타야나가 정의한 방식으로 자기중심주의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의 원천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 리카도(David Ricardo), 벤담(Jeremy Bentham), 그리고 아버지 밀(James Mill)과 아들 밀(John Stuart Mill) 등의 공리주의 철학에 있다. 물론 이 영국 철학자들의 첫째 원칙으로부터 나치의 성격을 도출할 수는 없다. 그들의 철학은 자유주의, 민주 정부, 사회적 협력, 선의, 그리고 국가 간의 평화를 다루고 있다. '이기주의(egoism)'와 '자기중심주의(egotism)' 모두 독일 민족주의의 본질적 특징이 아니다. 오히려 독일 민족주의의 본질을 규정짓는 특징은, 그것이 '최고선(supreme good)'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논한다는 점에 있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우리가 개별 국가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각 공동체의 이익 사이에는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마저도 독일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매우 오래된 생각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영국철학자들이 모든 개인, 모든 국가, 모든 민족, 모든 인종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또 근본적으로 올바른) 개념을 전개시켰던 계몽주의 시대까지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주 널리 퍼져있었다. … 나치 교리의 주요 결함은, 평화로운 인간의 협동, 즉 상품과 서비스의 상호 교환의 효과가, 전쟁과 파괴의 효과와 동일시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나치즘은 그저 이기주의 혹은 자기중심주의라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치즘은 매우 왜곡된 이기주의이자 자기중심주의로서, 아주 오래전에 잘못되었다고 판명된 실수로의 퇴보이다. 즉, 나치즘은 '중상주의(mercantilism)'로의 퇴보이며,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군국주의(militarism)'로 묘사한 사상의 부활이다.

요컨대, 나치즘은 자유주의 철학의 포기이다. 맨체스터학파와 자유방임주의의 철학으로 여겨지는 자유주의는, 오늘날 대체로 경멸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불행하게도 나치의 사상은 독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나치 사상의 지배적 지위에 대한 독일 철학의 공헌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엄연하게 다르다. 독일 철학은 항상 공리주의 윤리의 교훈과 인간 협동을 설명해주는 사회학을 거부해왔다. 독일의 정치학은 사회적 협동과 노동 분업의 의미를 결코 파악하지 못했다. 포이어바르를 제회한 모든 독일 척학자는 공리주의를 천박한 윤리학 체계라고 조롱해왔다. 독일 윤리학의 기초는 '직관(intuition)'에 있었다. 우리 영혼에서 들려오는 신비로운 목소리가 인간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도덕률(moral law)'은 다른 사람 혹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구속이다. 독일 철학자들은 각 개인이 도덕적 규범을 준수하여 사회적으로 해로운 활동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 발전을 위한 태도를 취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즉 장기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다시 말해, 독일 철학자들은 '이익의 조화(the harmony of interests)' 이론, 그리고 개인이 사회에 해를 끼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즉각적인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사실 일시적인 희생이며,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들은 개인의 목적과 사회의 목적 사이에는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이 있다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개인이 타인, 국가, 혹은 사회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복지를 위해서 도덕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역주: 자기 자신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진정한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조화롭게 생겨난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들이 제시한 윤리학은 '타율적(heteronomous)'이다. 독일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어떤 신비로운 실체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라고 명령한다. 즉, 더 우월하고, 고결하고, 강력한 존재인, 사회를 위해 개인적인 이기심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p. 142-43)

이제 나치즘의 기원에 대한 두 설명을 대조해보자. 랜드와 그녀의 상속자 페이코프에 따르면, 독일 철학자들, 특히 칸트는 개념들을 잘못 이해해왔다. 개념은 인간을 형성하는 근본적 요소이기 때문에, 만약 틀린 개념을 가지게 된다면, 보다 덜 근본적인 모든 것들 역시 반드시 잘못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미제스는 독일 철학자들이 그저 자유시장 체제에서의 교환과 협동의 이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시장의 결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가가 국민들의 생존과 번영을 돕기 위해서 다른 국가들로부터 자원과 영토를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히틀러는 그저 다른 독일인들이 지지한 정책들을 무자비하고 일관성있게 수행했을 뿐이다.

독일 철학에 대한 산타야나의 비판은 페이코프의 비판과는 결이 다르다. 비록 산타야나 역시 독일 관념론자들을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주관주의자라고 생각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미제스가 페이코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명백하다. 우선적으로, 그는 페이코프의 칸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오히려 미제스는 철학적 사상이 그렇게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미제스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물질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나치즘을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역주: 즉, 경제학적으로 볼 때, 또 장기적으로 볼 때 최대의 물질적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시장경제 하에서의 교환과 협력이다. 하지만 경제학 원리를 이해못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없다면, 당장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폭력적 수단에 의존하게 될 여지가 많다.]

비록 본래의 목적은 미제스와 랜드의 견해를 논평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 코멘트를 하고자 한다. 페이코프의 책에 대한 나의 서평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미제스가 옳았으며 페이코프는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나치즘의 탄생에 독일 철학이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한다.그러나 페이코프가 이 점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치즘의 탄생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 뿐만아니라 경제학을 비롯한 다른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역주: 예컨대, 나치가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를 비롯한 독일 역사학파의 국가간섭주의적 경제학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자유시장 경제학을 받아들였더라면, 그들이 왜곡된 자기중심주의 철학을 받아들인 경우에도 전쟁과 군국주의를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나치즘의 탄생에 대한 사회문화적 요소와 국제정치에서 독일의 지위 등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 아인 랜드와 그 후계자들이 나치즘의 모든 책임을 칸트에게 전가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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